“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까지 규제한 것을 보면 집값 상승세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수요자까지 이사가지 말고 살던 집에서 그냥 살라고 강요하는 건 지나칩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6·17 부동산 대책’이 거주 이전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6개월 내 입주하고, 집을 살 때 전세자금대출금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실수요까지 막는 규제라는 것이다. 대출 규제와 세금 인상 등으로 집값 안정을 유도한 것이 실패하자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다.
실수요자 매수도 사실상 차단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무주택자도 전세대출을 받은 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하면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하기로 했다.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신규 구입할 경우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한다. 처음부터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다. 현재는 9억원 초과 주택 구입 시에만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관련 규제 시행을 위해선 보증기관 내규 개정 등이 필요해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한도도 2억원으로 축소된다. 전세대출 자금이 갭투자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재 최대 보증한도는 수도권 4억원, 지방 3억2000만원이다. HUG는 내규 개정 후 전세자금대출 신규 신청분부터 이 규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수도권에 3억원 이하 아파트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사실상 전세자금대출로 집을 사지 말라는 얘기”라며 “대출까지 막힌 상황에서 전세 세입자가 집을 사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전입과 처분 요건도 강화했다. 현재는 무주택자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9억원 초과 주택 구입을 위해 주담대를 받으면 1년(조정대상지역은 2년) 내 전입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든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을 위해 주담대를 받는 경우 주택 가격과 관계없이 6개월 내 이사를 가야 한다. 1주택자는 6개월 안에 기존 주택도 처분해야 한다. 이 규제는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보금자리론으로 집을 사는 대출자들에게도 실거주 유지 의무가 부과된다. 지금까진 보금자리론 이용 차주에게 전입 의무는 부과되지 않았다. 다음달 1일부터는 보금자리론 신청분부터 3개월 내 전입 및 1년 이상 실거주 유지 의무가 부과된다. 의무를 위반하면 대출금을 회수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 막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실수요자의 집 매입까지 차단하는 등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은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은 물론 좀 더 좋은 지역으로 이사가려는 1주택자의 갈아타기 수요까지 막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갭투자는 줄겠지만 실수요자의 원성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규제 사각지대의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강수지만 이미 이번 대책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는 강남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이 부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년 거주 요건이 만들어져 재건축 단지들의 타격은 불가피하겠지만 핵심 지역의 기존 아파트들은 지금 규제와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잠실 국제교류업무지구 일대에 적용되는 토지거래허가제는 주택거래허가제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왔다. 주택거래허가제는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검토했지만 ‘사유재산권 행사를 침해한다’는 여론에 부딪혀 도입하지 못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거래허가제는 대규모 택지 개발 때 급격한 지가 상승과 투기세력 유입을 막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며 “이를 도심 아파트 단지에 적용한다는 것은 주택거래허가제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이어 “사유재산권 행사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막는 초헌법적 규제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전세자금대출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한 대출. 세입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으로부터 전세 계약에 대한 보증서를 발급받아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전세 계약이 끝나면 은행은 집주인으로부터 대출금을 돌려받는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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