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휩쓴 'K샴푸'…"그루밍족 머리숱 잡았죠" [넥스트K]

입력 2020-06-19 08:15   수정 2020-06-1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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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샴푸를 일주일 사용했는데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는 없어요. 하지만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 양이 줄었고, 확실히 샤워한 후 배수구에 남아있는 머리카락도 줄었습니다."

그라펜의 '루트 부스터 S.E 샴푸'를 사용한 싱가포르의 인플루언서(사회관계망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 셰틸 렌 씨의 후기다. 지난해 9월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누적 조회수 35만회를 기록했다.

구형모 세이션 본부장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본사에서 "올 5월 싱가포르 왓슨스에서 헤어케어(머리관리) 부문 상을 받았다"며 "탈모 샴푸인 루트 부스터 S.E 샴푸가 왓슨스 헤어케어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성용 탈모 샴푸로 광고하지 않아 많은 여성들도 좋아하는 제품으로 자리잡은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세이션은 남성용 화장품 브랜드 '그라펜'을 운영하고 있다. 미용에 투자하는 그루밍족을 겨냥한 그라펜은 2011년 출시됐다. 그루밍족은 패션 미용 등 자신을 가꾸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을 뜻한다.

구 본부장은 "2011년만 하더라도 남성 전문 화장품 브랜드라는 게 없었다"며 "아예 '제로'인 시장에 뛰어들어서 남성들에게 신선하게 선보이는 취지로 만든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남성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는 "지금은 남성들이 비비크림이나 쿠션을 바르는 게 보편화된 편이지만, 당시만 해도 놀라는 분위기였다"며 "남성 승무원이나 모델 등 꾸며야 하는 직업군에서 그라펜을 많이 사용하면서, 현재 10대 후반에서 20~30대 일반 남성들까지 확장됐다"고 했다.

국내에선 뜨는 옆머리를 눌러주는 다운펌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당시 다운펌은 미용실에서만 받을 수 있었다. 구 본부장은 "당시엔 약을 사거나 미용실에 가야 옆머리를 누르는 다운펌을 받을 수 있었다"며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셀프 다운펌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전했다.

그라펜의 '오리지널 셀프 다운펌'은 다운펌 용액을 뿌리에서 구렛나루 부분까지 붓빗으로 바른다. 쿠션밴드로 고정시킨 뒤 10~15분 정도 방치하고, 샴푸 후 모발을 말리면 평균 3~4주 동안 단정한 옆머리가 유지된다.



◆ 싱가포르 쇼피·라자다·큐텐 진출…왓슨스에도 입점

그라펜은 2018년 9월부터 해외 진출을 준비했다. 2019년 초부터 싱가포르 3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쇼피 라자다 큐텐에서 매출이 발생했다. 현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남성 화장품이 가장 많이 발달한 나라인 만큼, 그루밍 시장이 태동하고 있는 해외에서도 유망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헤어케어 부문에서부터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라펜은 샴푸 출시에 앞서 실리콘으로 만든 샴푸 브러시인 '엣지핑거'를 판매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구 본부장은 "샴푸 브러시를 판매하면서 머리를 감을 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브랜드라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며 "일본의 유명 샴푸브러시가 시장에서 사라진 상황이라, 그라펜 브러시는 각광받았고 그 뒤에 샴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브러시를 통해 그라펜의 브랜드를 인지한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샴푸도 사용할 수 있도록 유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모 완화에 도움이 되는 루트 부스터 S.E 샴푸를 중심으로 샴푸에 대한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구 본부장은 "그루밍족의 관심은 헤어케어에서 스킨으로 넘어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그라펜은 탈모샴푸 외 여러 종류의 샴푸를 두고 있어, 헤어 전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탈모샴푸도 루트 부스터 외에 제주산 편백나무를 사용한 '히노키 샴푸'를 내좠다. 비듬과 두피 노폐물을 제거하는 '리무버 샴푸'와 펌·염색모 전용인 '시카 실키 샴푸'도 출시했다.

그는 "하나의 탈모샴푸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감이 가벼운 샴푸, 사용감이 무거운 샴푸들로 세분화해서 판매하고 있다"며 "이는 소비자들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샴푸의 향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면 향이 없는 샴푸를 추가로 내놓는 방식으로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샴푸로 입소문이 나면서 싱가포르 왓슨스에서도 그라펜에 입점을 제의했다.



◆"베트남에선 콜드 부스터 인기…나라별 특성도 이해해야"

싱가포르 외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도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선 올인원 제품을 앞세우고 있다.

구 본부장은 "동남아 사람들이 미백에 많이 신경쓰고 있다고 들었지만, 자체적으로 조사했을 땐 그렇지 않았다"며 "더운 나라인 만큼 가벼운 느낌의 올인원 제품을 앞세우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에선 아이디어 상품인 '콜드 부스터'가 많이 팔리고 있다. 콜드 부스터는 뜨거워진 두피의 열을 식혀주는 스프레이형 쿨러다. 두피 열을 3초 만에 18도로 낮춰준다. 그는 "베트남이 더운 나라이다보니까 콜드 부스터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며 "태국은 아이브로우 등 색조 제품이 많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동남아 시장에선 페이오니아 통해 해외 진출도 한결 수월했다. 결제대행업체인 페이오니아가 판매대금을 대신 정산해줘, 해외 지사 설립 없이도 대금을 바로 받을 수 있다.

구 본부장은 "대금 정산과 함께 신뢰 있는 플랫폼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며 "해외에서 어느 플랫폼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막막했는데 페이오니아가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페이오니아는 전자상거래업체 쇼피와 유일하게 지불(페이먼트) 계약이 돼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해외 진출로 나라별 구매 특성도 체험했다. 베트남에선 제품 판매가 그대로 매출로 직결되진 않는다. 제품을 받아본 사람들이 현장에서 결제를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는 "베트남 시장은 치킨 배달처럼 물건을 받으면 금액을 지불하는 형태"라며 "온라인 판매 과정에서 많게는 100개 중에 40개의 결제가 취소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어 "소비자 대상으로 직접 판매를 통해 이 같은 차이를 받아들이고,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고 전했다.



◆ 말레이시아 가디언 '입점'..."연말 중국 H&B스토어 진출"

해외에서의 선전으로 그라펜의 매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늘어나고 있다. 구 본부장은 "올 1~2분기 매출은 작년보다 400% 이상 늘고, 연말까진 700%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외 동남아 지역의 오프라인 진출에도 나서고 있다. 그라펜은 이달 18일 말레이시아 헬스앤드뷰티스토어(H&B) 가디언 전체 매장에도 입점했다. 연말엔 중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그는 "위생허가가 나오면 중국 심천 광동지방에 있는 헬스앤드뷰티스토어인 매닝즈(mannings)에도 입점될 예정"이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인증을 거치고 있어, 올해 말이면 오프라인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라펜은 중국에서도 품질을 앞세울 계획이다. 해외에서 'K뷰티'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어서다. 구 본부장은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면 한국 뷰티 브랜드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심지어 중국에서 K뷰티는 유통기한이 1년이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이어 "K뷰티를 앞세우기 보다는 제품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이후에는 러시아도 보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생활수준을 감안하면 이제 그루밍족이 나올 만한 환경"이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마케팅 채널의 확산이 잘 돼 있어, 판매를 진행하기에 용이한 시장"이라고 판단라고 있다.

국가별 제품 차별화도 구상 중이다. 그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와 향을 토대로 싱가포르 만의 제품을 내놓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며 "계절성 제품이 될 수도 있고, 지속적으로 판매하는 제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그루밍족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남성을 대상으로 꾸미는 '첫 경험'을 제공하면서다. 립밤도 기본적인 보습 외에 자연스러운 발색, 생기돋는 립밤 등 3가지를 내놨다. 그는 "립밤은 세트상품으로 구성해 선보이고 있다"며 "처음 보습 립밤만 찾았던 소비자도 자연스럽게 발색 립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라고 했다.

구형모 본부장은 "해외에서 반짝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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