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연락사무소 폭파와 38선 경제학

입력 2020-06-18 18:01   수정 2020-06-19 00:15

“생산하는 족족 도둑맞거나 몰수당하거나 세금을 내고 남는 게 없을 거라고 걱정하는 사업가는 투자와 혁신을 도모하기는커녕 일하고자 하는 인센티브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한 대목이다. 이들은 ‘왜 어떤 나라는 잘살고, 어떤 나라는 못살까’를 연구하며 같은 민족으로 오랜 기간 같은 문화를 공유한 남북한 사례에 주목했다.

그리고 ‘경제적 인센티브를 창출하고 사회 전반에 정치 권력을 분산시켜주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유무’가 남북한의 운명을 갈랐다고 결론지었다. 사유재산권을 핵심으로 하는 시장경제와 정치적 다원주의가 남북한의 성패를 좌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설명하는 장(章)에 ‘38선의 경제학’이란 제목을 달았다.

북한 투자 위험성 부각

이 책을 떠올린 건 북한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가 뭐든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자신들의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나라 재산쯤은 언제든 한순간에 허공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약 18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 대한민국의 재산이다. 남북이 2000년 체결한 ‘투자보장 합의서’는 ‘남과 북이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 자산을 보호한다’고 명시했지만 북한은 이를 무시했다. 한국 정부의 재산도 이럴진대 민간기업의 재산은 어떨까.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직후 미국 싱크탱크의 북한 전문가들에게 전화와 이메일을 돌려봤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안보석좌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협상에 달려 있다’는 게 여전히 평양의 협상 노선”이라고 꼬집었다. 과연 이런 곳에 누가 뭘 믿고 재산을 투자할 수 있을까. 외부 자금을 유치하지 못하면 북한의 빈곤 탈출은 힘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 전 “북한은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처럼 잘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메시지였다.

北 안 바뀌면 '평화 경제' 공허

하지만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은 제재를 거두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과 다시 ‘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 쉽지 않을 것 같다. ‘하노이 노딜’ 이후 미·북 관계는 식었다. 한때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북한 얘기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승리하면 더 깐깐하게 나올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 없는 정상회담으로 독재자에게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란 선물만 안겨줬다고 비판해왔다. 대북정책도 완전히 다시 짤 가능성이 높다. 수미 테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바이든이 집권하면 ‘백 투 스쿨(새 학기)’이 되면서 기존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북정책은 한동안 모멘텀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의 경제학’을 쓰고 싶어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 개방을 하려는 의지가 없는 한 공허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북한은 여전히 ‘38선 이북 경제학’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게 현실이다.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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