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와 조각·똥거름에서도 배움 얻은 연암 박지원

입력 2020-06-18 18:14   수정 2020-06-19 03:04

“기와 조각과 조약돌, 똥거름이야말로 진정한 장관이다.”

1780년 음력 5월부터 10월까지 사행단으로 중국에 다녀온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이랬다. 중국 사람들은 담을 쌓을 때 깨진 기와 조각을 이용해 물결·동그라미·동전 구멍 등 온갖 무늬를 만들었다. 집앞 뜰에는 기와 조각과 냇가의 조약돌을 이리저리 맞춰 무늬를 냈다. 그러면 비가 오더라도 땅이 진창이 될 걱정이 없을뿐더러 미적으로도 훌륭했다. 중국인들은 심지어 똥을 거름창고에 모아 네모·여섯모·여덟모로 반듯하게 쌓아올렸다.

연암 전문가인 박수밀 한양대 교수는 《열하일기 첫걸음》에서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배움의 기회로 삼았던 연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연암은 처음 경험하는 중국 여행에서 끊임없이 자각하고 성찰하며 백성을 이롭게 하는 법을 궁리했다.

압록강을 처음 맞닥뜨린 중국 마을 책문에서부터 그랬다. 소 외양간과 돼지우리 등 가축 종류에 따라 우리를 짓는 방법이 달랐다. 거름더미와 똥거름까지 그림처럼 깨끗하고 정갈하게 치워져 있었다. 모든 도구가 규격에 맞고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었다. 여기서 깨달은 바를 연암은 이렇게 적었다.

“이와 같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용(利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용이 있음 다음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고, 후생이 된 다음에야 정덕(正德), 곧 도덕이 바로 설 것이다. 생활이 스스로 넉넉하지 못할진대, 어떻게 그 도덕을 바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열하일기는 단순한 견문록이 아니라 역사, 지리, 풍속은 물론 경제·문학·예술·건축·의학·종교에 이르는 전 분야를 망라한 책이다. 따라서 당대에 관한 배경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열하일기의 주요 장면들을 통해 작은 것을 다르게 보고 경계인의 시선으로 다른 문화를 대했던 연암의 기본자세를 보여준다. 아울러 열하일기에 담긴 박진감 넘치는 모험 서사, 수많은 사건과 경험에 깃든 비유와 상징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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