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가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우량 채권이 아니라 부실한 채권에 투자한 뒤 돈을 빼돌리는 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년 동안 펀드 명세서까지 조작해 판매 증권사들을 감쪽같이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펀드는 환매를 연기했다. 라임 펀드와 비슷한 사기 사건으로 피해 규모는 5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체투자 운용사인 옵티머스자산운용은 18일 판매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에 400억원 규모의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만기 상환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펀드’는 기업이 공공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을 매출채권을 편입해 수익을 내는 펀드다. 주로 만기 6개월로 설계됐다. 안정적으로 연 3% 안팎 수익을 내는 펀드로 입소문을 타면서 증권사 지점에서 8000억원가량 팔렸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그러나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니라 부실 사모사채를 인수한 뒤 ‘펀드 돌려막기’로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3000억원가량 상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5000억원이 순차적으로 환매 중단될 것으로 증권사들은 우려하고 있다. NH투자증권(4300억원) 한국투자증권(300억원) 등에 집중돼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와 펀드 명세서까지 위조하는 수법을 동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공공기관 채권 투자한다더니 부실債만 매입…또 터진 '펀드 사기'
옵티머스 5000억 환매중단 위기…'라임 사태' 뺨치는 펀드 사기
옵티머스자산운용은 헤지펀드 1위였던 라임자산운용과 달리 큰 존재감이 없었다.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를 표방하면서 국내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매입하는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펀드’ 운용에 집중하는 곳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이 펀드는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과 같은 공공기관의 공사를 수주한 건설회사 등의 매출채권을 싸게 사들여 연 3% 안팎의 수익을 추구한다. 만기 6개월 단위로 성공적으로 수익률을 돌려주면서 인기를 끌었다. 처음엔 법인용으로만 판매하다 개인 ‘큰손’ 투자자들에게도 팔기 시작했다. 펀드 가입을 ‘예약’하는 고객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 운용사는 부실 사모사채로 고객 자금을 빼돌린 뒤 나중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돈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던 정황이 발견됐다.
부실 사모채권 활용…라임 사기와 유사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펀드’는 지난해 하반기 집중적으로 팔렸다. 지난달까지도 증권사 지점에서 팔려나갔다. 라임 사태가 불거지고 사모펀드 조사가 한창 이뤄지는 기간과 맞물린다.
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은 기존 사모펀드를 실사하고 점검했지만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공공기관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가 있다는 것과 펀드 명세서도 확인했다.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경기교육청 등 공공기관이 매입을 약속한 확정금리형 매출채권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펀드 자금이 막히면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측이 양수도 계약서와 펀드 명세서 등 모든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펀드에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실체가 불분명한 장외기업의 부실 사모채권들로 채워졌다.
한 증권사 소속 변호사는 “라임과 비슷하게 부실 사모사채로 자금을 가로챈 것”이라며 “만기 상환에 맞춰 신규로 들어오는 자금 등을 활용해 기존 펀드 수익을 맞춰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뒤에 투자한 투자자의 돈으로 앞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펀드를 상환해주는 ‘폰지사기’에 가깝다는 말이다.
계약서 조작 위조까지
이번 사건은 라임 펀드 사기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다. 부실 사모사채를 활용해 돈을 빼돌린 것뿐 아니라 무역금융펀드처럼 시가가 없는 비유동자산의 기준가를 조작한 혐의도 제기되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펀드 사무수탁회사의 허술한 관리 체제를 노렸다. 부실 사모사채를 편입해놓고 사무수탁을 맡은 한국예탁결제원에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이름을 바꿔달라고 해 펀드 명세서를 위조했다. 수탁은행인 하나은행에는 부실채권 매입을 지시하면서 수탁 사무기관에는 허위 기재를 요구한 것이다. 판매사가 확인했을 때 멀쩡한 채권이 편입돼 있었던 이유다.
이들은 또 H법무법인과 함께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양수도한 것처럼 계약서를 위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펀드 실사를 통해 공공기관 매출채권 편입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했다”며 “그 서류 자체가 위조됐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사무수탁회사는 감시 내지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운용 회사에서 지시가 오면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임 펀드가 일부 증권사 프라임브로커(PBS)와 공모해 사기를 벌였다면 옵티머스는 증권사를 속이기 위해 사모펀드 관리 체제의 구멍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예탁결제원도 이번 사태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옵티머스운용에 대한 현장검사를 해 환매 연기 사유와 관련한 사기 등 의혹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검찰 조사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진형/오형주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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