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세계 곳곳에서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실험됐다. 하지만 목표와 시행 내용 등은 시행된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각각의 사례를 검토하면 기본소득 제도의 허와 실을 살펴볼 수 있다.
핀란드, 실업자 대상 기본소득 실험
핀란드 정부는 2017~2018년 2년간 만 25~58세 실업자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매달 560유로(약 76만원)의 기본소득(basic income)을 지급했다. 이들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직업을 새로 구하더라도 계속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기본소득 지급은 2017년 시작됐지만 실험 준비는 2015년 5월부터 했다. 당시 집권에 성공한 우파정부는 대표기업이던 노키아의 몰락으로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실업수당 지급액을 줄여 사회복지지출 비용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존에 받던 임금 대비 실업수당 규모(실업수당의 임금대체율)가 높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보다 실업수당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문제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출발했다. 복지체계의 대수술을 전제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당시 핀란드 정부의 계획이었다.
핀란드에선 소비 진작 효과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도입된 국내 중앙정부 및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긴급재난지원금(일명 코로나지원금)과는 개념뿐만 아니라 도입 취지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핀란드에서 실업수당은 평균 1000유로 안팎으로, 기본소득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다. 다만 정기적으로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고, 직업을 구하면 지급이 중단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핀란드 정부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받은 수급자들이 저소득·비정규직에라도 취업하는 등 근로 의욕을 고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달 6일 발표한 기본소득 실험 최종 결과에서 “기본소득은 수급자의 취업일수를 늘리는 데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공표했다. 실업자들의 취업과 재정적 인센티브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핀란드 정부의 결론이다.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 부결시켜
국내에서 논의되는 보편적 기본소득과 가장 비슷한 개념은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졌던 기본소득 도입안이다. 모든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317만원), 만 19세 미만은 625스위스프랑(79만원)을 조건 없이 나눠주겠다는 것이 도입안의 핵심이었다. 진보 시민단체들이 2013년 10월 국민투표 시행 요건(10만 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하면서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됐다. 투표 결과 국민의 77%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당시 국민투표에 부쳐졌던 기본소득안은 소득 등에 따라 지급 방식이 달랐다. 직업이 없는 성인은 매달 2500스위스프랑을 받을 수 있다. 월소득이 2500스위스프랑 미만인 성인은 이 소득을 공제한 차액을 기본소득으로 수령한다. 예를 들어 매달 1만스위스프랑의 월급을 받는 근로자는 2500스위스프랑을 기본소득으로, 나머지 7500스위스프랑을 직장으로부터 받는다. 총소득은 기본소득과 상관없이 동일한 것이다. 현재 받는 급여에 상관없이 추가로 일정액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지급됐던 국내 재난지원금과는 차이가 있다.
당시 스위스 연방정부는 국민투표에 부쳤음에도 정작 기본소득 도입에는 반대했다.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원이 연간 2080억스위스프랑(약 263조5300억원)에 달해 국민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1970년대부터 기본소득 논의 꾸준히 이어져
서구에선 핀란드와 스위스 이전에도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있었다. 네덜란드에선 1977년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내건 정당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1985년 네덜란드 정부과학정책회의가 ‘부분적 기본소득’ 도입을 제안하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란 기구가 결성됐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논의 과정에서 실제 기본소득 실험이 이뤄지기도 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했다. 실업자 250명이 대상이었으며 전원에게 월 960유로를 지급했다.
북미에서도 실험이 있었다. 미국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 등 천연자원 판매로 벌어들인 수입 일부를 기금으로 1년 이상 알래스카에 거주한 시민권자 전원에게 매년 1600달러(약 196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저소득층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던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재원 부족으로 관련 실험을 1년 만에 중단했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인공지능(AI) 기술과 자동화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 로봇에 세금을 물리는 ‘로봇세’로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은 논리적 정합성이 있을까.
② 기본소득 실험을 한 핀란드와 네덜란드 등이 기본소득 지급과 근로 의욕 고취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유는 무엇일까.
③ 근로소득 도입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할 때 국민투표로 결론을 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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