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전 너무 기뻤던 아파트 분양 당첨이 지금 제겐 재앙이 된 것 같습니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정부가 규제지역을 확대하고 1주택에게도 대출을 제한하는 내용의 6·17대책을 내놓은 지 사흘이 지났지만, 지역차별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내놓은 대책들이 대출을 일괄적으로 조이면서 서민들도 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어서다.
정부가 '집값 상승률'만 놓고 이번 대책을 정하다보니 집값이 낮은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집값은 강남의 10분의 1도 안되는데, 규제를 똑같이 받게 됐다는 것이다. 비규제지역에서 투기지역으로 갑자기 뛰어오른 곳들은 말할 것도 없다.
민심을 반영하는 척도라는 청와대 국민게시판에는 이번 대책과 관련된 호소와 억울한 사연들이 수십개가 올라왔다. 이 중 지난 18일 '저는 부동산 투기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20일 오후 4시 현재 1만5000명이 넘는 동의가 이뤄졌다. 부동산 관련 카페에도 "나도 비슷한 처지다", "대출없이 집 살거면 직장이 서울인데 여기에 뭐하러 사냐", "같은 지역이라도 새 아파트만 오르고 빌라나 다세대들은 그대로인데 너무하다" 등의 공감글을 올리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 따르면 이 글을 올린이는 자신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인천 계양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회생활이 20년 가까이 되고 첫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는 것으로 보아 40대 중후반의 가장으로 추정된다.
그는 "2015년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20년된 1100가구가 넘는 1억7000만원에 24평 아파트를 샀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둘째까지 태어나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가 검단신도시에 분양을 받았다. 다음주에 중도금 대출 신청을 앞둔 상황에서 6·17부동산 대책으로 검단신도시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고 대출한도가 달라지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인천 서구는 연수구, 남동구와 함께 비규제지역에서 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난 19일부터 대출규제가 강화됐다. 검단신도시는 분양권 거래가 가능한 단지는 3개 뿐으로 대부분 아파트는 전매제한에 걸려 있다. 서구는 검단신도시에서의 계속된 분양으로 불과 4개월 전에도 미분양관리지역이었던 곳이다.
그는 "2년 뒤 입주 때 LTV를 어떻게 적용받게 될지 모르겠다. 60%라면 입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40%를 적용받게 되다면 잔금마련을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오래된 아파트다보니 집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며 "내 집 값이 올라가는 걸 누가 바라지 않겠냐. 그런데 이제 저는 집값 상승 보다는 손실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될 것 같다"고 호소했다.
또 "평범하게, 부유하지 못하게, 빠듯하게 살고 있는 제가 갑자기 투기과열지구에 아파트 분양권을 가진 부동산 투기꾼이 되어 버렸다"며 "제가 반성을 해야하는 걸까요?"라고 반문하면서 글을 마쳤다.
이번 정책이 발표된 지난 17일에는 서구에서 백석동에서 분양한 '검암역 로열파크시티푸르지오'(2379가구)의 당첨자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청약자가 8만명을 넘어 인천 최대 청약을 기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곳이었지만, 당첨자들은 기쁨을 나눌 새도 없이 대출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입주를 앞뒀다는 A씨는 "서구 일대에 전용 59㎡의 새 아파트가 없다보니 이번에 실수요 청약을 했다"며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하려고 했는데 대출 때문이 걱정이다. 6개월 후에 전매를 해야하나 싶으면서도 이제 집 살 기회가 없어질 것 같아서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이 단지는 오는 29일부터 계약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모델하우스에서 당첨자를 대상으로 관련서류를 받고 있다.
서구의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검단주민총연회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구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도농복합시인데, 지역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통째로 지정한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백진기 회장은 국토부에 보낸 성명서에서 "검단의 주민들은 피해자다. 검단은 청라도 아니고 루원도 아니고, 검단신도시도 아이다"라며 "국토부의 판단대로 분명 부동산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지역은 있으나, 분양가도 회복되지 않는 부동산도 많은 지역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주변환경이 열악했던 점도 설명했다. 그는 "서구는 수도권 매립지로 상처받은 지역이다. 우리주민은 대한민국의 제1의 기피시설인 '수도권매립지'를 30년간 수용하고 살아왔다"며 "무너진 환경주권이 부동산 폭락을 불러오면서, 검단의 집을 팔아서는 지방 소도시의 집도 살수 없는 형편이다"라고 토로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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