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평가하는 한국 여성의 노동환경은 끔찍한 수준이다. 여성의 교육 기회, 임금, 육아, 관리직 비율 등 10가지 지표로 만든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13년 이래 7년째 꼴찌다. 이 험악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두 딸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만 유리천장이 존재할까? 객관적 실력보다 특정 학교 졸업 여부, 고시 기수, 정규직 여부, 직종에 따라 임용과 승진이 좌우된다면 여기에는 또 다른 유리천장이 덮여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늘날 서울 강남 집중과 고액 과외, 고시 열풍 등은 유리천장을 회피할 단축통로를 찾는 과잉경쟁이 만든 부작용이다.
여성과 소수자에게 임용인원을 할당한다고 유리천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는 유리천장 외에 ‘유리벽’이 따로 있다. 위로만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막혀 있는 것이다. 위와 옆을 아우를 수 있는 능력자는 또다시 남성, 최고 학벌, 국가고시 출신, 정규직 등의 순수 혈통들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가끔씩 정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제자들이 있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 세속적 평가와 달리 탁월한 역량, 전문성과 열정을 지닌 제자를 찾아내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몇몇 제자는 기어이 교수 또는 전문 관리직이 돼 훌륭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사회적 계층 이동이 가장 컸던 나라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특권계급이 없어지고 대지주는 해체되고 농지가 배분된 덕분에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기회가 열려 있었다. 세계에서 전례 없는 고속 경제성장과 민주화 또한 이런 역동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빠른 성장 과정에 감춰져 있던 불평등이 점차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 역시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각한 국가에 속한다. 더 나아가 현세대의 불평등이 다음 세대의 불평등을 세습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장인 주병기 교수 등이 만들어낸 ‘개천용불평등지수’는 점점 높아져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깨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혁신이다. 어떤 조직에서 기수와 혈통을 뛰어넘어 인재를 내·외부에서 폭넓게 발탁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과감하게 제안하고 또 직접 시행했지만, 모두 다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사장님, 제발 유리천장을 깨주세요”라고 호소하던 한 고졸 여직원의 열망을 끝내 이뤄주지 못한 것은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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