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는 파이다"…귀족 대신 품질 택한 현대차 노조

입력 2020-06-25 11:28   수정 2020-06-25 11:31


귀족 노조로 비판받던 현대차 노조가 달라지고 있다. 품질 향상을 통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한다고 노조가 앞장서고 있어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최근 노보를 통해 "조합원은 생산만 하고 품질은 회사가 책임지라는 식의 자세는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고객이 믿고 사는 차를 만들기 위해 노조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협력업체인 명보산업의 사업포기 논란과 관련해서도 "단가 후려치기나 생산물량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닌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협력업체들의 경영여건 개선에도 관심을 드러냈다.

올해 임금협상에서는 임금 동결을 제시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인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4월 노보를 통해 임금을 동결하고 고용을 보장받은 독일 금속노조의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독일 금속노조 사례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협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처한 만큼 협력업체와의 상생과 충분한 일감 확보, 근로자들의 정년 보장 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경영진과 함께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그간 발생한 품질 결함 사례를 수집하고 품질 개선을 위한 공동선언도 발표했다. "고객이 만족하는 완벽한 품질 확보와 시장 수요에 따른 생산 극대화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약속을 담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 현대차 노조는 물론 자동차 업계 노조가 보여왔던 행보와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현대차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2012년부터 7년 연속으로 공장 가동을 멈춰온 바 있다. 올해도 르노삼성과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인상을 포함한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현대차 노조의 변신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임금협상은 8년 만에 무파업으로 타결됐고 단체교섭에서는 '고용세습' 비판을 받아온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이 삭제됐다.

이상수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올해부터 현대차 노조를 이끌고 있는 집행부는 '사회적 조합주의' 노선을 내걸고 당선됐다. 습관적인 파업을 지양하고 조합원이 생산 품질을 책임지는 동시에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상수 노조위원장은 취임 직후 "배부른 귀족노동자, 안티 현대차로 낙인 찍힌 불명예를 바꿔야 한다"며 "조합원이 생산 품질을 책임지고 회사는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 역시 품질과 생산성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를 토대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윤을 늘려야 임금인상이나 고용보장도 가능하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는 급격한 변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임협에서는 파업권을 포기하면서 임금인상도 적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찬성률도 지난해(63.4%)보다 낮은 56.4%에 그쳤다. 일부 현장 조직들은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신임 집행부 주장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노조는 노보를 통해 "일부 현장 조직들이 이념논리에 집착한 나머지 조합원 갈라치기를 통해 민심을 조성하려 한다"며 "이념에 사로잡힌 일부 현장 조직들이 어떤 궤변을 늘어놓더라도 품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위기 사태가 겹치며 협력을 통해 고용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노조 집행부를 지지하는 조합원도 늘어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조합원은 "이 위원장이 당선 직후 울산 관공서 차량이 현대차가 아닌 기아차라는 발언을 했었다.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서도 현대차 노조가 외면받고 있었던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미움받는 기업에게 임금인상이나 고용유지가 가능하겠나. 젊은 조합원들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품질위원회를 구성해 완성차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생산 현장을 지속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다가가려는 시도에도 나섰다. 지난해 말 불거졌던 와이파이 논란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이 나서 "와이파이는 (생산현장에) 이롭지 않다"고 발언하는 등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활동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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