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동상 파괴의 정치사회학

입력 2020-06-25 18:01   수정 2020-06-26 00:17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미국 여러 도시에서 반인종주의 시위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포틀랜드에서 동상이 쓰러졌고, 볼티모어에선 동상에 붉은색 스프레이가 뿌려졌다. 워싱턴이 대농장 소유주로 흑인 노예를 소유했다는 게 이들의 공격 이유다. 영국에선 윈스턴 처칠이 시위대의 공격 포인트가 됐다. 처칠은 20세기 영국의 영광을 이끈 대정치가다. 그가 생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게 화근이 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공격받았고, 독일에선 아프리카의 분할을 주도한 초대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공격 대상이 됐다.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이 영국에서 많았다는 소식도 충격적이다.

처칠·간디도 공격하는 시위대

간디가 흑인을 ‘깜둥이’라고 표현하는 등 인종차별적 언행을 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치 지도자만이 아니다. 근대 서구 사상을 형성했던 계몽사상가들도 이런 공격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영국 사상가 데이비드 흄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훼손됐다. 계몽사상의 근간을 마련한 흄이 백인만이 예술과 과학에서 주목할 만하다며 인종적 차이를 명확히 했다는 게 이유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동상도 붉은 페인트로 칠해졌다. 그가 소유했던 재산이 식민지 무역을 통해 축적된 것이어서라고 한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로 유명한 칸트의 동상에도 독일 경찰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들의 동상 공격은 전방위적이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무역상인들도 이들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미국을 건설하고 서구 근대사회를 이끈 정치 지도자와 사상가들이 더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국면이다. 지금 이들 시위대가 표현하려는 게 단지 인종차별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 단죄하면 무질서 낳을 수도

일부에선 중국 문화대혁명에 빗대기도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적한 정체성 이론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그는 세계의 정치판을 뒤흔드는 단어가 ‘아이덴티티(정체성)’라고 못박았다. 사람들이 종교와 인종에 따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시대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득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존엄성과 품위를 손상시키는 데 분노하고 이를 원상 복구하도록 행동한다고 후쿠야마는 보고 있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홉스봄은 “20세기 들어 과학의 발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졌지만 정작 과학은 전문화와 세분화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학에 의존적이면서도 과학에 대해 불안해하는 시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위대의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에는 불안이 깔려 있고, 이런 불안의 원인으로 과학의 지나친 발전을 무시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구 사회에 본질적 변화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10년 전 미국에서 전개된 ‘월가를 점령하라’와 지금 상황이 다른 것도 이런 시대 변화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사가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의 해석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보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공과를 다루지 않으면서 단죄만 하려는 건 이성의 진보도 아니요, 정체성의 진화도 아니다. 오히려 무질서를 낳는 씨앗이다. 과거를 다루는 건 미래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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