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회사들이 인종차별을 연상시키는 상품명을 바꾸고, 일부 제품은 판매까지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6일 CNN, BBC,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글로벌 소비재 회사인 유니레버는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킨케어 제품 중 하나인 '페어&러블리(Fair & Lovely)' 스킨 라이트닝 크림의 이름을 바꿀 계획이다. 페어&러블리 크림은 45년간 판매돼온 제품으로, 인도에서만 연간 5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주 존슨앤드존슨(J&J)은 자사 브랜드 '클린 앤드 클리어'와 '뉴트로지나' 등의 제품 가운데 미백 크림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백 화장품들은 아시아와 중동 등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밝은 피부가 어두운 피부보다 낫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주면서 그동안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미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살해된 사건으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 속에 이 같은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서니 제인 유니레버 미용부문 사장은 "우리는 '페어(흰 피부의)', '화이트(하얀)', '라이트(밝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름다움에 있어 한쪽의 가치만 전달한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피부 색깔을 포괄하는 미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을 연상시키는 상품명을 변경하는 사례는 글로벌 식품업계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스위스 최대 종합식품 회사인 네슬레는 지난 23일 사탕류 전문 브랜드인 앨런스를 통해 호주에서 판매 중인 라즈베리 맛 캐러멜류 제품인 '레드스킨스'(Red Skins)와 초콜릿 맛 젤리 '치코스'(Chicos)의 상품명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네슬레는 해당 상품에 대한 불만이 수 년간 접수됐다고 밝혔다. 레드스킨스는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을 비하하는 말이고, 치코스는 라틴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담은 단어다. 네슬레는 콜롬비아에서 판매 중인 마시멜로 '베소 데 네그라'(Beso de Negra)의 이름도 바꿀 예정이다. 베소 데 네그라는 흑인 여성의 키스란 뜻이다.
네슬레는 또 사용하고 있는 언어나 그림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00여 개 브랜드와 2만5000여 개 제품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20일에는 역사가 100년 가까이 된 미국 아이스크림 '에스키모 파이'도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알래스카 원주민인 이누이트를 비하하는 말이다.
이 밖에 흑인 여성의 얼굴을 로고로 써온 팬케이크·시럽 브랜드 '앤트 제미마'와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남성 노인의 이미지를 사용했던 '엉클 벤스'도 지난 17일 브랜드명과 로고를 수정하기로 했다. 앤트 제미마는 팬케이크 가루와 시럽, 아침식사 제품 등을 생산하는 브랜드로 1889년 설립돼 올해로 131년째를 맞았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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