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놓고 다른 견해가 돌출하거나 그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 독립군의 활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됐고, 우리는 이를 계승했다. 반면 북한은 ‘조선’을 국호로 택했다. 민족을 강조하며 ‘주체사관’을 정립한 뒤에는 단군릉을 만들고 ‘조선 계승’ 사실을 강조했다. 비록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역사의 계승성과 정통성이 체제 경쟁에서 효과적임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불분명하게 기술된 원조선
개인은 물론 나라와 민족에도 정통성과 계승성은 존재 방식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뿌리야말로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4000여 년 역사 속에서 수백 개의 나라가 명멸했고, 전혀 다른 종족과 언어집단들이 번갈아가며 나라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이름 아래 계통을 분명히 하고 역사책에 서술했다. 지금도 ‘중화’라는 자신감을 토대로 국가를 경영한다. 일본은 고대에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고, 현재 일본도 19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비로소 완성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만세일계’라고 하며, 기원전 660년 전부터 현재까지 한 영토에서 하나의 역사가 이뤄졌다고 계통성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역사 속 계승성과 정통성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앞 전시실에 설치한 연표에 고조선 조항이 들어간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역사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쓴 시민들의 주장 덕분이었다. 역사책에서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부족국가’에서 출발했다고 서술했고, 1970년대에 오면 ‘성읍국가’라는 표현으로 수정했다. 이 용어는 학문적으로 부적합할뿐더러 역사적인 상황과 비교해도 전혀 다르다. 먼저 있었던 ‘원(原)조선’(고조선)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기술함으로써 원조선과의 계승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성읍국가 때부터 우리 역사가 시작한 것으로 느끼게 했다.
과대평가된 한사군
물론 원조선이 건국한 연도와 영토, 발전 단계 등에 대해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다. 이것은 중국,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원조선의 마지막 단계인 위만조선은 한나라와 1년 동안 수륙 양면전을 펼치며 접전을 벌였지만 능력의 한계와 내부의 배신으로 끝내는 멸망하고 말았다. <사기>와 <한서>에 따르면 이후 한나라는 조선의 영토에 이른바 ‘사(4)군’ 혹은 ‘삼(3)군’을 설치했다.
이 기록을 근거로 조선은 전체가 한나라의 영토가 됐으며 오랫동안 ‘식민지’가 된 것으로 가르쳤다. 그런데 한나라는 곧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흉노와 갈등을 벌이는 등 국제질서가 혼란해지면서 간섭 또는 직접 관리할 여력을 잃어갔다. 얼마 안 가 진번 임둔은 없어지고, 기원전 75년에는 현도군마저 요동으로 후퇴했다. 다만 ‘낙랑’은 300여년 이상 이름을 보존했으나, 한(전한)나라가 기원 직후에 멸망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시대별로 낙랑의 위치와 성격, 크기 등을 정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사군은 실체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릇된 통념과 역사의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대평가해 온 것이다.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하면 영토를 빼앗기고 부(富)를 탈취당할 수밖에 없다. 군인을 비롯해 많은 민간인도 포로로 끌려간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단절되고 역사마저 진공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주민은 그 터에 남아 살아가고, 생활에 유용한 경험과 지식을 갖게 되고, 정치체제와 사회를 운영하는 경험도 풍부해졌다. 무엇보다 역사를 알고 자의식을 보존하고 있었다. 원조선의 유민들은 종족·언어·문화 등이 비슷했고 오랫동안 공동의 역사적 경험을 보유했기 때문에 독립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드디어 기회가 생기자 마치 대한제국이 망한 뒤 독립군들이 만주, 연해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수복전쟁을 하면서 단체와 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크고 작은 소국을 세웠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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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선의 유민들은 종족·언어·문화 등이 비슷했고 오랫동안 공동의 역사적 경험을 보유했기 때문에 독립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드디어 기회가 생기자 마치 대한제국이 망한 뒤 독립군들이 만주, 연해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수복전쟁을 하면서 단체와 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크고 작은 소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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