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정말 없어요. 씨가 말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단 전화번호 남겨 놓으시구요. 매매가 가능한 가격을 말씀 하시면 나올 수 있습니다", "누가 사긴요. 자금 부족한 젊은 사람들이지"….(상계·중계동 일대 공인중개사들)
서울 노원구 주요 아파트들의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정부가 규제지역을 확대하고 갭투자를 차단하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외곽에 저가 매물이 몰려 있는 노원구에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수요층들이 그나마 낮은 가격에 매입이 가능한 노원구 일대로 몰리고 있어서다.
노원구에서는 저가 매물을 찾는 수요가 꾸준했던 지역이다. 여기에 갭투자 물건이 쏟아지면서 매매가 성사되고 있다. 중계동, 상계동, 공릉동 등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6·17대책 이후에 오히려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갭투자 매물들을 받아내는 매수자들은 30~40대의 젊은 부부들로 알려졌다.
○노원구 아파트 거래량, 이달들어 600건 넘어
28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에서의 아파트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서울 아파트 구별 아파트 거래건수를 집계한 결과 25일 기준으로 노원구는 623건에 달해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구로(317건), 도봉(313건), 송파(278건) 등이었다. 서울은 6월 아파트 매매거래량이 4482건이었는데, 중저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지역에서 거래가 활발했다.
노원구는 일주일 새 0.28%가 올라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월계동 미륭,미성,삼호3차,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보람 등이 500만~950만원 올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조사해보니 6·17대책 이후 일주일새 신고가를 기록한 아파트수만 30개 단지가 넘었다. 신고가 안된 거래까지 합하면 이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의 더블역세원인 노원역 일대의 주공아파트들은 나날이 신고가 행진이다. 상계주공아파트 대부분의 단지들이 신고가로 거래가 체결되고 있다.
이들 아파트는 1980년대말부터 준공돼 대부분 연식이 30년 이상이다. 그럼에도 20평대의 소형 아파트들도 6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매매가가 최근 1년 새 2억원 이상 오른 아파트들도 넘쳐난다. 매매가가 3.3㎡당 2500만원을 넘어섰다.
○30년 넘은 주공아파트, 잇따라 신고가…4일 만에 5900만원 올라
3단지(전용 57㎡)는 지난 24일 7억700만원에 매매되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불과 4일 전만 하더라도 비슷한 층이 6억4800만원에 팔렸다. 4일 만에 매매가가 5900만원 오른 것이다. 지난해 6월에 4억6500만원에도 거래됐지만, 12·16대책 이후 시세가 가파르게 오르더니 연초에 6억원을 돌파했고, 이제는 7억원대까지 넘었다.
6단지(59㎡)는 지난 23일 6억5000만원에 매매됐는데, 지난해 4억2500만원에 거래됐던 매물이다. 1년 만에 2억2500만원이 뛴 것이다. 지난 3월에 6억원대를 넘어서더니 이제는 6억원대가 매매가로 안착한 모습이다.
은행사거리, 일명 '은사'로 불리는 학원가 주변의 아파트들은 10억원을 돌파했다. 중계동 청구 3차 아파트는 전용 84㎡가 이달에 10억300만원에 거래됐다. 이미 이 아파트는 작년 9월부터 9억원을 넘기면서 지역 내 고가 아파트로 자리 잡았다. 나와있는 매물은 10억3000만원에 달한다. 건영3차 역시 10억원을 넘어서기 직전이다. 지난달 9억9000만원에 거래가 체결됐고 이달들어서도 9억원 중반대에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지역 내에 기대되는 호재는 있다. 창동·노원·상계·당고개역 일대는 지상 철도가 지하화 되는 ‘4호선 창동역-당고개역 지하화 사업’의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상계역과 왕십리역을 잇는 동북선 경전철(추진 중), 남양주 진접지구까지 이어지는 4호선 연장선(계획 중),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계획 중) 등이 추진되고 있다. 연한이 대부분 30년이 넘다보니 막연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갭투자 성지에서 실수요자 매입으로…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실수요와 투자매물이 섞여 있다고 입을 모은다. 상계동 A공인 관계자는 "올해 초만해도 투자자 비율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실수요자들이 많이 늘어났다"며 "전세로 살고 있다가 집을 구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B공인중개사는 "연초에는 갭투자자들끼리 매매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며 "이제는 갭투자자들이 내놓고 실거주자들이 사가는 경우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매수 대기자들이 주변에 세입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갭투자자들이 올려놓은 가격을 세입자들이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의 규제책은 나오지만, 서울의 끝자락인 노원구 마저도 집값이 나날이 오르고 있어서다. 세입자들은 더 늦기 전에 매입을 서두르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지난달 집계약을 체결한 김모씨는 "누가 새 아파트 마다하고 30년도 넘은 아파트에 살고 싶겠느냐"면서도 "빠듯한 살림에 서울에서 교통과 교육여건이 갖춰진 지역이 여기말고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김씨의 남편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값이 급등했다는 통계를 두고 신축 위주의 고가 아파트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하는 걸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우리 동네에 30년이 넘는 아파트들이 수두룩한데, 최근 1년 동안 다 1억 넘게 올랐다"여 울분을 토했다. 그는 "집값을 잡겠다고 기다리다 남들이 올려놓은 집값 주고 결국엔 사게 됐다"며 "소득은 그대로인데, 대출은 줄고 집값은 오르고…"라며 말을 줄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들어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가가 1% 넘게 오른 지역구는 구로(1.76%), 강북(1.04%), 노원(1.00%) 등 세곳이다. 세 지역 모두 서울에서 중저가 아파트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대출이 어려워진 수요층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올해들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가 밀집한 중계동 일대는 전세가율이 높은 편이다. 세입자들은 전세계약을 갱신하느니 '울며 겨자먹기'로 집을 매매하고 있다.
한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이 52% 올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를 비롯한 김 장관은 최근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통계를 내는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4% 정도 오른 것으로 나왔다"며 "경실련 통계는 매매되는 아파트 중위가격으로 나온 것인데, 신축·고가 아파트 위주의 통계이기 때문에 전체 값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