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 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 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 잔.’(가사 일부)
노랫말은 형제남매 여럿이 성장한 집안의 막내아들을 회상하게 하는 유행가의 전형이다. 청중이 감동하는 것은 내리사랑을 음유한 통속적인 가족을 얽은 노랫말과 우리 고유의 술 막걸리가 감성을 무르익게 하기 때문이다. 노래의 모티브와 소재는 막걸리, 한 잔의 술, 인생사 희로애락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한다. 막걸리를 매개로 감흥과 눈물을 버무린다. 막걸리는 찹쌀과 멥쌀·보리·옥수수·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배합하고 발효시켜 걸러낸 술이다. 맑은 술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서 만든 술로 빛깔이 탁하고 알코올 성분이 낮다. 발효된 재료를 주물러 걸러서 빛깔이 탁해 탁주·탁배기로도 부른다. 막 거른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 희다고 해서 백주, 집마다 담그는 술이라고 해서 가주, 특히 농가에서는 필수적인 술이라고 해서 농주 등으로 불린다.
술(막걸리)은 유행가의 주요 모티브다. 1932년 채규엽은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로 식민지 시절 민초들의 가슴팍을 후벼 팠다. ‘이 술은 눈물이냐 긴 한숨이냐/ 구슬프다 사랑의 버릴 곳이여….’ 1956년 황정자는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로 흐르는 ‘오동동 타령’으로 6·25전쟁으로 상처 난 민초들의 빈 가슴을 위무했다. 이 노랫말에 걸친 동동주도 막걸리의 한 종류다. 1994년 최백호는 ‘낭만에 대하여’로 노래 속의 막걸리를 위스키로 격상시킨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서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을 걸치고, 짙은 색소폰 소릴 들으며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유행가는 세태의 변화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세월 따라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다.
대중은 왜 유행가, 트로트에 감응할까. 노래는 평세락(平歲樂) 난세분(亂世憤) 망국탄(亡國嘆)이다. ‘태평하면 즐거운 노래, 난세에는 분통 터지는 노래, 나라가 망하면 한탄·탄식하는 노래’가 불린다. 한(恨)이 흥(興)으로 감응하는 이 시대는 평세인가 난세인가 망세인가. 유행가는 역사이고, 대중의 삶 자체다. 서양음악의 묘미는 선율에 있고, 우리 유행가의 묘미는 오선지에 드러누워 있는 노랫말에 있다. 이 매력과 마력을 합친 노래가 바로 강진이 부른 ‘막걸리 한 잔’, 유행가의 진수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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