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내다본 통일 군주 왕건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입력 2020-06-28 08:27  


역사 속에서 집단과 국가는 항상 생성과 붕괴, 분열과 통일의 변증법을 반복한다. 우리는 과거 민족국가라는 의식이 강했고, 항상 통일을 지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여 년 만에 재발한 후삼국이라는 분열상태를 최종적으로 통일이라는 위업을 실현한 인물은 왕건이다. 무려 40여 년 가까이 벌어진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어떻게 역사에 등장했을까.

후삼국 시대의 도래와 동아시아의 대분열

통일 신라는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권력쟁탈전과 경제실패, 지방호족들의 반란 등으로 이미 붕괴 중이었다. 마침내 900년에 경상도 산골 출신의 견훤이 후백제를 선포했고, 901년에는 신라의 왕족이며, 미륵불이라고 자처한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이렇게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고, 통일전쟁이 전 국토를 황폐하게 했다. 전쟁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의 국가 구조와 지역 갈등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퇴행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왕족과 수도 중심의 질서를 벗어나 호족과 지방의 성장, 신불교의 등장이라는 혁신적이고, 발전적인 측면도 있다.

국제환경은 왕건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역사에서 증명됐고, 현실에서 보듯 내부분열이 심각할 때 외부 세력들이 강력하거나 통일되면 반드시 이용당하거나 침략당한다. 후삼국이라는 분열 시대에 중국 지역과 북방 지역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있었다면, 대규모 침공이나 당나라처럼 민족의 통일과정에 외세로서 간섭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당나라가 멸망한 후에 ‘5대 10국’이라는 대분열 상황이었고, 북쪽은 발해와 거란이 운명을 걸고 충돌 중이었다. 따라서 후백제와 고려는 이러한 국제환경을 통일의 승자가 되는데 활용했다.

포용력과 협력을 아는 왕건의 성격

‘시조신화’에 따르면 왕건은 하늘과 바다의 만남, 산신과 해신의 결합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는 군사 지도자로서 매우 탁월한 능력을 지녔고, 이를 충분히 활용했다. 또한 통일에 효력을 발휘한 능력이자 궁예와 견훤이 못 갖춘 장점은 포용성 강한 성품과 거시적인 세계관이다. 신흥 고려는 국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고, 왕건의 정치력과 군사력도 호족세력이나 부하들을 압도할 수준에는 못 미쳤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잘 파악했고, 권력의 독점과 오만이 아닌 권력의 공유와 인품으로 통일을 추진했다. 밖으로는 경쟁자들과 불필요한 갈등과 전투를 회피했고, 안으로는 인내와 포용심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궁예의 부하로 입문한 직후부터 연전연승을 거둔 그가 이미 광기를 보인 궁예의 관심술과 칼날을 벗어났다는 점은 매우 신중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임을 알려준다. 더구나 쿠데타로 왕권을 탈취한 것이 아니라 부하들의 추대로 고려를 세운 사실은 덕망이 높았기 때문이다. 927년에 견훤은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잔악한 짓을 했다고 기록됐다. 하지만 왕건은 멸망 직전인 신라를 우호적으로 대했고, 마치 신라의 복수전처럼 후백제와 대구 팔공산에서 전투를 벌였다. 포위됐다가 신숭겸의 희생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왕건을 지켜본 신라인들은 이미 고려의 백성으로 변신했을 것이다.

그는 무려 29명에 달하는 유력한 호족들의 딸들을 부인으로 뒀다. 이러한 혼인정책을 추진해서 강력한 지방세력들을 군사적인 충돌, 희생 없이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권력을 분점하고, 통일의 실질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심지어는 통일 완료 후에도 경순왕에게 딸인 낙랑공주를 부인으로 줬다. 적이었던 견훤은 물론이고, 끝까지 저항한 아들인 신검도 살려줬다. 이러한 행동과 정책들을 분석하면 그는 군사지향적이고 야심만만하며, 반란을 일으킨 인물치고는 드문 성격의 소유자였다. 소위 성군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해양력과 해양정책을 토대로 통일과 외교에 성공

또한 왕건이 성공한 비결은 해양활동의 역할과 해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용했다는 점이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거점으로 동아지중해 서부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경기만에는 그의 할아버지인 작제건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내륙 하항도시인 개주(개성)를 비롯해 정주(풍덕), 염주(연안), 백주(배천) 4개주와 강화 등 황해도 남부와 경기도 서부, 강화도가 만나고, 황해와 한강하류와 예성강이 합쳐지는 소지중해에서 성장한 해상호족이었다. 경기만의 강화도 일대는 해상세력이 물류체계를 장악한다면 경제력과 정치력을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을 확보할 수 있는 해륙 및 수륙교통의 요지다.

왕건은 자기의 세력을 강화하고 통일을 추진하는데 해양호족들을 최대로 활용했다. 첫째 부인인 신혜왕후의 아버지인 유장자(유천궁)는 한강하구와 강화도가 만나는 정주에서 성장한 해상이었다. 둘째 부인인 장화왕후의 아버지인 오다련은 영산강 하구에 기반을 둔 해상세력이었다. 어쩌면 장보고 새력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국가외교와 해양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창한 당성군이 있는 남양만의 홍유, 당진(면천)에 기반을 둔 박술희와 복지겸 세력들, 임진강 하구의 파평 윤씨, 한강 하구의 공암(양천) 허씨, 안양천의 금천 강씨(강감찬의 아버지), 셋째 부인의 아버지인 충주 유씨 세력들, 그밖에도 여러 해양세력들이 왕건의 전력이 되었다. 그는 903년 3월, 해양호족들과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남부로 내려가 나주 지역과 인근의 10여 군현을 빼앗았다. 909년에는 해군대장군으로서 나주를 지켰고, 진도와 고이도를 점령했다. 910년에는 70여 척의 배에 2000여 명씩 싣고 후백제를 원정했다. 왕건 세력이 초기의 열세를 뒤집고 후백제에게 최종적으로 승리를 한 배경에는 ‘백선장군’, ‘해군대장’이라는 칭호를 가진 그의 강력한 수군력이 있었다.

또 하나, 국제환경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양을 외교전에 활용했다. 923년에 강남의 오월국에 사신을 보냈고, 또한 답례를 받았다. 북쪽의 후량·후당·후진 등 화북의 나라들에게 사신을 자주 파견했고, 특히 후당은 925년을 시발로 짧은 기간에 8번이나 보냈을 정도였다. 후백제의 해상방해를 극복하며 황해중부 횡단항로를 사용한 해양능력 때문에 가능했다. 시대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는 해양의 중요성과 해양력의 강화가 국가발전의 토대라는 사실을 확신한 것이다. 이후 고려는 해양활동 능력을 바탕으로 군사적인 활동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활발한 외교, 국제무역, 국내의 조운 등에 활용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으며, 문화적으로 성숙했다.

정체성과 사상의 중요성, 미래를 내다보는 통일군주

왕건은 신흥국인 고려의 정체성과 사상, 그리고 미래의 국가발전 정책까지 해결하려는 지도자였다. 북쪽에서 동족인 발해가 거란에 공격당할 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취약한 국력의 운명을 걸고 군사적인 능력이 검증된 요나라와 직접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다. 그는 발해를 구하는 모험을 포기했지만, 대신 계속해서 내려오는 발해 유민들을 수용해서 거주지를 마련했다. 아울러 고려인과 혼인을 추진했으며, 벼슬을 줬다. 그뿐만 아니라 거란을 적대국으로 인식하면서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고, 거란에서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만부교 아래에 묶어둬 죽게 했다. 이는 왕건의 단호한 자세와 고려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국제적으로 선언했고, 북상해서 청천강 하류에서 영흥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나라의 국시, 즉 후대의 임금들이 추진할 국가발전 정책의 대강을 발표했다. 이 것이 훈요 10조이다. 그 가운데 제 7조는 ‘왕이 된 자는 공평하게 일을 처리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이다.

만약 통일이 필요한 작업이라면, 큰 상처와 실패라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추진할만한 가치가 있고, 시도해볼 만한 상황이 도래한다면 궁예·견훤·왕건의 성격과 정책을 비교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후발주자였고, 조건이 불리했던 왕건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통일을 실현시킨 특별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군사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능력과 국제질서와 시대상황을 파악하는 자세이다. 하지만 그가 뛰어난 것은 포용성과 인간주의, 정치가로서의 거시적인 세계관과 미래 정책까지 고민하는 역사적인 인식이다.

왕건, 그가 한민족의 통일 모델로서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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