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부동산 대책만 21번…'미신 경제학' 될라

입력 2020-06-28 17:08   수정 2020-06-29 00:36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무려 21번 나왔다. 행정(내부)과 집행(외부)의 시차를 감안하면 아무리 짧아도 정책 주기가 6개월이라는 점에서 대책이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다. “내일, 모레면 또 바뀌는데 따라갈 필요가 있느냐”는 국민보다 “또 무슨 정책을 내놓지”라고 고민하는 정책 당국자의 고충이 더 큰 상황이다.

6·17 부동산 대책은 ‘가장 세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 잠실, 대치, 삼성, 청담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집을 매매할 때는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책까지 포함돼 있다. 사유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 정도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은 “한국 부동산 대책이 미쳤다”고 했다. 이 호소가 좀처럼 귓전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런 6·17 대책이지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참패’라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경기 김포, 파주 등 비규제지역의 집값이 급등하는 풍선 효과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세다. 서울 강남, 목동, 마포, 상계 등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 가격은 평균 1억원 이상 올랐다. 심지어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아파트 가격도 상승세다.

부동산시장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책당국은 추가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고강도 대책이 얼마든지 있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조만간 발표할 태세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어떤 대책이 나올까’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일부 강남 주민은 강도 높은 대책이 나올수록 ‘강남 특권’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다린다고 한다.

모든 경제정책은 정책당국과 국민(시장 포함)이 동참하는 축제가 돼야 한다. 정책당국의 신호에 따라 국민이 반응해야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초생활인 의식주와 관련한 정책일수록 그렇게 돼야 한다. 부동산 대책을 마련할 때 시장의 생리와 국민의 마음을 읽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적(敵)은 특정 목적 및 이념 등과 같은 프레임에 갇혀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갈라파고스 함정이란 중남미 에콰도르령(領)인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 이상 떨어져 있는 것에 빗대 급변하는 환경 변화를 읽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책당국이 특정 프레임에 갇혀 있다면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시장은 불안해지고 국민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외부성’도 급증해 국가의 개입이 늘어나고 있다. 사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간 괴리를 의미하는 외부성이 나타나면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전제로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널리 적용되는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무너진다.

외부성 탓에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경제학의 전제가 흔들리면 ‘가치’가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현실진단 자료로서 경제지표의 유용성이 떨어진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런 여건에서 추진되는 경제정책은 ‘프레이밍 효과’, 즉 경제주체와 시장 반응까지 감안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경제지표는 괜찮은데, 시장과 국민이 불안해하던 미국과 한국의 경제정책을 비교해보자.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하는 미국은 금리를 내려 시장과 국민을 안정시켰지만,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국의 일부 경제 각료와 진보학자는 ‘위기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무시했다. 그 결과 한국 경제의 침체 골이 깊어졌다.

오히려 ‘텍스트 마이닝 기법’ 등을 활용해 경제지표와 경제주체의 반응 간 괴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책당국의 바른 자세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란 정책당국이 경제정책을 발표한 이후 정책 역행적 성향의 어조는 ‘+1’, 정책 순응적 성향의 어조는 ‘-1’로 빅데이터 지수를 산출해 시장과 국민 친화적으로 조절해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요즘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신 경제학(voodoo economics)’의 덫에 걸려 연임에 실패할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미신 경제학이란 미국 남부에서 행해졌던 마교(魔敎)로서 정부가 공약과 정책을 내걸지만 효과가 없거나 의도와 다른 효과가 나타날 경우 ‘이는 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행위나 마찬가지다’라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한국의 부동산 대책이 21번째 반복되는 과정에서 미신 경제학으로 비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부동산 대책이 서울 강남 등의 집값을 잡기보다 특정 목적을 달성하거나 오히려 세수를 증대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정책당국은 단순히 ‘마교’로 무시하거나 ‘가짜 세력’으로 내몰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시장과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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