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한 공단에서 화학제품을 제조하는 S사는 고용 창출 우수기업으로 꼽히던 곳이다. 대기업 계열사 사장 출신인 이 회사 김모 대표는 5년 전 회사를 인수한 뒤 34명이던 직원을 65명으로 늘렸다. “고용 창출을 사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 직원 20%를 내보냈다. 김 대표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버틸 수가 없었다”며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직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9일 내년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을 맞은 가운데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4% 인상한 1만770원으로 제시하면서다. 중소기업계는 최저임금 인상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울산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사 대표는 “코로나19보다 인건비 상승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자동차 부품업체가 정부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상황”이라며 “경기가 최악인 가운데 최저임금마저 더 오르면 폐업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 김포의 유압실린더업체 대표는 “비숙련 노동자와 외국인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맞춰주느라 정작 30년 이상 경력의 선반 기술자들 임금을 3년째 못 올려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에 공장을 줄 테니 대신 경영해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 600곳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인상되면 ‘신규 채용 축소’ (44.0%), ‘감원’ (14.8%) 등 절반 이상의 기업이 고용 축소로 대응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 중소기업이 현 수준의 임금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코로나보다 더 두려운 최저임금 인상…폐업 中企 속출할 것"
최저임금 또 오르면 충격 감당할 여력 없어 '벼랑 끝'
국내 제조업을 이끌던 경남 창원과 울산 일대 자동차·조선 기자재 부품업계는 최악의 경기침체를 맞아 빈사 상태다. 가동을 멈춘 공장이 늘면서 경매로 나오는 매물도 속출하고 있다.
울산에서 자동차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출이 막힌 뒤 주 3일만 공장을 돌리고 있다”며 “7월부터는 아예 전면 휴업에 들어가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게 그의 토로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중소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최저임금 추가 인상에 따른 충격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문 닫을 판인데…”
경기 화성에서 자동차 부품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최모 사장은 지난 5월 한 달간 공장 문을 닫았다. 수주 물량이 대폭 줄어든 데다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휴업 기간 직원들에게는 평소 임금의 70%가 지급됐다. 최 사장은 “인건비 30%라도 아껴보자는 생각에 임시 휴업을 했다”며 “막대한 고정비를 생각하면 공장을 닫는 게 낫다”고 말했다. 경기 반월공단의 한 주물제조업체 사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경기가 악화돼 직원들도 내보낼 판”이라며 “이런 상황에 최저임금을 올려달라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최저임금은 33% 인상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5일 주휴수당을 더해 최저임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결정함에 따라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인력 감축이 유일한 선택지
인건비 등 고정비가 상승하면서 생산 효율을 위해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기업계의 설명이다. 경기 김포에서 도장업체를 하는 민모 사장은 2년 새 고용 인원을 40명에서 30명으로 줄였다. 대신 설비투자를 늘려 생산 효율을 높이기로 했다. 그는 “발주처에서 받는 납품 단가는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치솟았다”며 “임금 부담 탓에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중소 제조업체가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화성에서 선반제조업체를 하는 남모 사장도 고용인원을 줄이고 로봇 설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인건비 부담에 시달리는 것보다 훨씬 득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는 “영세한 업체는 설비투자 자금조달조차 어려워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리쇼어링’ 정책과도 엇박자
인건비 등 고정비 상승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오프쇼어링(생산기지의 타국 진출)’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금액은 618억47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충북 음성에서 창호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은 “해외 사업 리스크보다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떠안아야 할 리스크가 더 커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부터 중국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그는 “중국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월 50만원 이하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은 취직하자마자 월 180만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세 명 쓸 돈이면 중국에서 10명을 고용할 수 있다”며 “중국 리스크가 크다고 봤는데 국내 최저임금 논의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는 중”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국, 베트남에 현지법인이 있는 중소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업체의 76.0%가 국내로 돌아올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등 국내 높은 생산비용(63.2%)’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양찬회 KBIZ중소기업연구소 소장은 “법인세 인하, 보조금 지원과 같은 인센티브도 중요하지만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 철폐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선/민경진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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