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상에서 노조 협상력의 주 원천은 파업(위협)이다. 파업으로 인한 기업 손해가 클수록 사측을 굴복시키기 쉽다. 물론 파업에는 급여 손실, 기업 도산으로 인한 실직 위험 증가라는 대가가 따른다. 사측이 힘의 우위에 있다면 노측에 양보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파업 발생의 개연성이 커진다. 노조가 우위에 있어도 무리한 요구에 이은 파업 강행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산업평화는 노사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달성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노사관계는 노측에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파업 참여자의 사업장 출입이 금지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노조는 사업장 내 파업을 할 수 있다. 핵심 산업과 공공부문을 장악하고 있어서 파업으로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노사분쟁 시 언론과 시민단체, 노조 출신 다수가 포진한 정치권의 지원사격도 받는다. 사측 대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업장 점거를 막기 위해 직장 폐쇄를 할 수 있지만 합법성 요건이 까다로워 자칫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체노동 투입이 금지돼 있다 보니 파업은 곧 조업 중단으로 이어진다.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은 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가 일본의 170배를 넘을 정도로 우리의 노사분규가 심한 한 원인이다.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의 1차 시장과 2차 시장 간 격차 확대라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자본 해외순유출이 작년 493억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한 배경에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기업 활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함께 강성 노조의 득세가 있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한 정부에 필요한 것은 규제 혁파와 함께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개혁이었다. 독일 사민당 정부가 하르츠 개혁을 했듯 노동 개혁은 노조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더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진행은 반대 방향이다.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노조 주장을 대부분 정책화하는 등 정노(政勞)일체의 느낌까지 든다.
노조법 개정안 중 노조전임자 조항은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만든 제도를 뿌리째 흔든다. 노측이 복수노조 등을 받는 대신 근로시간면제제를 수용했는데, 이제 양보했던 것만 되돌리는 것이다. 기업에 전임자 임금 지급 부담을 지우는, 사회적 타협에서의 3자 간 약속을 깨는 행위다.
해고자와 실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은 더 문제다. 재직자가 아니면서 누가 작지 않은 금액의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이 되려 할까? 아마 불법 행위 등의 이유로 해고된 자들과 이념형 투쟁가들일 것이다. 이들은 해고될 위험이 없고 기업이 망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노조가 과격해지고 노사관계가 파탄으로 향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해고자들에게는 노조가 조합비로 급여를 주고, 대신 현직인 전임자의 급여를 회사에서 받아낼 가능성도 있다. 사측이 간접적으로 해고자 급여를 지급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구미(歐美) 노조와 달리 사측으로부터 사무실 제공,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등의 혜택을 받는 우리의 노조에 구미와 같은 기준을 들이대 외부자를 조합원으로 받게 하는 것은 무리다.
노조3법 개정안은 지금도 기울어진 노사관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할 것이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와중에 혼자 몸집을 불리고 있는 노조의 투쟁성을 높여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130위로 평가한 낮은 노사협력지수를 더 낮출 것이다. 산업평화를 깨고 자본의 해외 탈출을 부추겨 고용절벽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뜻이다. 사업장 내 파업 금지, 대체인력 투입 허용 등의 상응 조치 없이 노조 권한만 강화하는 개정안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아예 사라져버리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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