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요즘은 내년도 예산을 준비할 시기다. 아직 3차 추경안이 논의되고 있기는 하다. 나는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업무를 담당했었다. 예산을 소요에 맞게 배분하는 역할이다. 지금은 공공기관에 있으면서 예산을 받기 위해 찾아가서 설명한다. 조직 증원도 마찬가지다. 예산을 받는 을의 입장인 것이다. 예산을 배분하는 입장에서는 전체 국가 소요를 보고 반영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예산을 받는 입장에서는 본인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반영되지 않으면 을로서는 답답하다.
갑과 을의 관계. 부정적 뉘앙스의 용어다. ‘갑의 횡포’ ‘을의 눈물’ ‘갑을이 뒤바뀌었다’ 등의 표현들이 그렇다. ‘역지사지’도 같은 맥락이다. 갑을 관계는 바뀔 수 있다. 아니 바뀌기 마련이다. 갑을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갑을 관계가 고정된다면 을은 얼마나 피곤하고,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할까. 바뀌게 돼 있다. 갑의 위치에 있다가 돌아서면 을의 위치로 바뀌는 것이 인간사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저게 무슨 권리라고 저렇게 하는가, 자기 것이 아닌데. 그 자리에 있어서 그런 것인데….” 업무적인 것은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이다. 업무를 위해 잠시 갖게 되는 권한이다. 을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면 거기에 정답이 있다. 나도 바로 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역지사지를 항상 생각의 한 곁에 둬야 실수하지 않는다.
귀를 막으면 편향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편향된 입장이 부딪히면 사회 비효율이 발생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 52시간 근로제, ‘워라밸’ 중시 속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직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노동한다. 반면 노동생산성이 그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갑을 사이 생각의 간격을 좁히는 것도 생산성을 높여가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상생과 공존의 따뜻한 공감이 있는 사회. 사회적 자본이 있는 신뢰 사회. 이런 품격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효율적 사회로 가는 길은 갑과 을이 서로 공감해 주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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