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조직에서 장관을 공개적으로 성토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정부부처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다. 고용부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고용부는 ‘긴급’이라는 명칭답게 신청 2주 이내 지급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업무 전담을 위해 기간제 근로자 1300여 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청 건수가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2주 이내 지급이 불가능해졌다. 신청 건수는 지난 28일 기준 98만5019건으로 100만 건에 육박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업무 미숙까지 겹쳐 지원금 집행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재갑 고용부 장관(사진)이 나섰다. 26일 전국 기관장회의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신청서류를 간소화하고, 신속한 지원을 위해 고용부 전 직원이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 전 직원은 본부와 지방관서를 모두 합쳐 7000명 전원을 가리킨다. 이 장관은 29일 “앞으로 3주간 본부와 지방관서 전 직원이 모두 심사에 참여하는 집중처리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당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본부 6층 대회의실에서는 전 직원이 점심시간에 김밥을 먹으면서 심사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 장관의 긴급 지시에 고용부 실·국장 등 고위 공무원은 물론 전 직원이 매일 10건씩 3주간 서류를 심사하게 된다. 약 600명이 근무하는 본부만 놓고 보면 3주간 약 10만 건 처리가 가능하다. 지방관서에 근무하는 인원(약 6500명)을 감안하면 3주 내 100만 건 이상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고용부의 계산이다.
하지만 장관의 ‘하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원들은 들고일어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용유지지원금(6월 기준 약 150만 명)과 가족돌봄비용 지원사업(17만여 명), 폭증하는 실업급여 수급자(1~5월 약 68만 명)로 업무가 마비 상태인데 인력 증원은 없이 또다시 ‘일 폭탄’을 던졌다는 항변이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사업 주요 대상은 대부분 고용보험 가입자도 아니어서 고용부 소관 업무도 아니지 않느냐”는 게 주된 불만이다.
급기야 고용부 노조는 “이렇게 급박하게 지방에 부담을 가중하는 본부 방침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며 “코로나 재난지원금 방식을 준용해 지급방식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한 근로감독관은 “이번 사업은 힘 없는 고용부가 또 총대 메듯 들고 온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공시생들 사이에서는 힘든 부처인 ‘노병우(고용노동부·병무청·우정사업본부)’는 피하라는 말이 있는데 고용부가 첫 번째로 꼽히는 게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알려지자 다른 부처에선 고용부 노조가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른 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비상시국에 장관까지 나서서 처리하겠다는데 일선 공무원들이 어떻게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고용부 내부에서도 반발은 부적절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자칫 조직이기주의나 철밥통 공무원의 배부른 소리로 비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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