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있는 듯…'지젤' 영상에 열정 100% 담아"

입력 2020-06-30 17:30   수정 2020-07-01 09:15


“관객 앞에서 전막 공연을 올리지 못해 정말 아쉬워요. 실연(實演)이 아니라 영상이지만 제 ‘지젤’ 독무와 파드되(2인무)를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29일 기자의 전화를 받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신승원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그는 11일 예정됐던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 주인공 지젤 역으로 무대에 오르려 했다. 입단 12년 만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처음 추게 되는 ‘지젤’이었다. 지난 5월 28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신승원과 만나 인터뷰했을 때 그는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었다. “지젤로는 첫 무대라 많이 설레고 떨린다”며 “연습이 끝나 집에 가서도 지젤의 아련함이 남아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인터뷰 다음날 ‘지젤’ 공연이 취소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수도권 방역 강화 조치로 국공립 공연장이 다시 문을 닫고 국립예술단체의 공연이 중단된 탓이었다.

‘지젤’ 타이틀 롤 데뷔 무대는 무산됐지만 그는 연습을 쉬지 않았다. 국립발레단이 30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영상 ‘KNB 타임리스 스테이지’를 찍기 위해서다. 국립발레단은 이날 공연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이달 중순까지 발레 하이라이트와 단원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공개한다.

그는 이번 영상에서 ‘지젤’의 1막 솔로 바리에이션(주요 독무)과 ‘탱고’의 파드되를 선보인다. 지난 11일과 12일 진행된 촬영에서 신승원은 “객석은 텅 비어 있지만 관객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공연하듯 연기했다”고 말했다. “일부러 카메라를 보지 않고 객석을 바라보며 춤을 췄습니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열정을 100% 전하고 싶었습니다.”

신승원은 그 어느 때보다 비련의 여인 ‘지젤’로 무대에 오르기를 원했다. 귀족과 평민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속 주인공 지젤은 발레리나들이 선망하는 역할이다. 사랑의 단맛에 취했다 광기를 내뿜고, 이별의 아픔도 표현해야 한다. 춤과 함께 섬세한 연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부상을 이겨내고 따낸 지젤 역이라 더 간절했다. 그는 코르드발레(군무)와 솔리스트를 거쳐 입단 8년 차인 2017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다양한 작품의 주역으로 활발히 무대에 올라야 했지만 2018년 초 무릎이 고장났다. 입단 이후 처음 겪는 부상이었다. 그는 담담히 그때를 돌아봤다.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아예 걷질 못했어요. 그런데 후배들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았어요. 얼른 회복해서 무대에 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처음 병가를 내고 6주 동안의 재활훈련을 마친 그는 곧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주인공 카테리나역을 소화했다. 지난해에는 창작발레 ‘호이랑’의 남장여인 랑 역으로 나섰다. 이 공연에서 쉽지 않은 남장 무사 역을 빼어난 동작과 세밀한 연기로 소화하며 호평받았다. 한국무용예술상에서 이 작품으로 연기상도 받았다. “발레는 남성과 여성의 몸동작을 명확히 구분해요. 남성들이 쓰는 춤을 연습하느라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해 남장 연기를 소화했죠.”

신승원은 올해 ‘지젤’ 외에 다른 역할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그의 머릿속엔 맡고 싶은 역할이 가득했다. “저 스스로 드라마에 강한 무용수라고 생각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마농’의 마농을 맡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쉬지 않고 몸 상태를 최고 컨디션으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무용수가 아니라 안무가로도 나선다. 신승원이 지난해 안무를 짠 ‘너만의 길을 걸어라’(Go Your Own Way)가 오는 8월 1~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 정은영, 수석무용수 김기완과 함께 무용극을 펼칠 예정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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