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역습…'묻을 곳'이 없다

입력 2020-06-30 17:31   수정 2020-10-07 16:06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불법으로 방치된 폐기물의 60% 이상이 처리장 부족으로 소각이나 매립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민간업체에 폐기물처리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줘도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근거 없는 조례 등으로 건립을 막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쇼핑이 증가해 생활쓰레기가 더 늘고 있는데도 처리장 건설이 지연되면서 ‘폐기물 대란’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환경부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이날까지 발생한 불법 폐기물은 27만5000t이다. 이 중 처리장에서 소각·매립된 양은 10만4000t으로 발생량의 37.8%에 불과하다. 17만1000t에 달하는 쓰레기가 여전히 방치돼 있다는 얘기다. 불법 폐기물이란 쓰레기처리장에서 매립 또는 소각되지 못한 채 무단으로 버려지거나 사업장 내에 허용량을 초과해 방치된 쓰레기를 말한다.

국내에 불법 폐기물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2018년부터다. 당시 국내 업체들이 필리핀에 폐기물을 불법 수출한 게 잇달아 적발되면서 해외 반출이 어려워졌다. 과거 한국의 최대 폐기물 수출국이던 중국도 2018년 1월부터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그해 4월에는 수거업체들이 재활용 쓰레기 수거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쓰레기처리장은 늘어나지 않았다.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쓰레기는 증가하고 있지만 처리장 용량은 그대로여서 불법 폐기물이 전국 곳곳에 방치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 폐기물처리업체 대표는 “지자체가 처리장 허가를 내주지 않아 처리용량이 20년간 정체돼 있다”고 말했다.

폐기물 대란이 우려되자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주요 지자체에 쓰레기처리장 건설을 허가해 주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환경부는 “일부 지자체는 법령에 위임 근거가 없는데도 조례·지침 등을 통해 인허가를 지연하고 있다”며 “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 지방자치법에 위배된다”고 했다.
法 묵살한 지자체 '님비'에…
갈 곳 없는 폐기물 매월 1만t씩 쌓여
민간 폐기물처리업체인 DS컨설팅은 2016년 1월 환경부 산하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충북 청주시 청원구에 쓰레기소각장을 지어도 된다는 허가(적정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4년이 넘게 지났지만 착공도 못 하고 있다. 청원구가 “지역 민원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안 했다”며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아서다. 이 회사 홍모 대표는 “지자체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물었으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정부로부터 적정 통보를 받은 시설물이기 때문에 건축허가를 해야 한다”고 의결했고, 대법원도 “지방자치단체가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위법(부작위 위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청원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 반대에 ‘속수무책’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발생한 불법 폐기물의 60% 이상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지만 신규 소각장과 매립장 건설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설 허가권을 틀어쥔 지자체가 “우리 지역엔 절대 안 된다”며 행정 처리를 진행시키지 않아서다.

폐기물처리장을 지으려면 지역환경청과 지자체의 허가를 모두 받아야 한다. 환경청은 사업 타당성,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한 ‘적정성 평가’를 하고 기준에 충족하면 허가를 내준다. 하지만 환경청이 적정 통보를 해도 건설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가 갖가지 이유를 들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홍 대표는 “청원구에 행정소송을 냈고 대법원에서 부작위 위법(행정처리를 할 의무가 있음에도 하지 않아 발생한 위법) 판결이 났다”며 “그럼에도 청원구는 허가를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지자체는 처리장 건설을 막기 위해 상위법보다 더 센 조례나 지침을 제정하기도 한다. 경기 연천군에 폐기물 처리시설을 지으려던 A업체 대표는 “140억원을 들여 부지를 매입했는데 연천군이 자신들이 제정한 지침을 들이밀며 시설 건립을 반대했다”고 했다.

폐기물관리법은 처리시설을 설치할 때 상수원보호구역의 수질이 악화되거나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지 등을 심사하도록 돼 있다. 연천군의 지침은 “폐기물 처리시설 부지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300m 안에 학교, 유치원 등 보육시설, 장애인·노인·아동시설, 마을상수도, 소규모 급수시설 및 먹는물 공동시설이 있는 경우나 폐기물처리시설 부지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300m 안에 5가구 이상의 민가가 밀집한 지역, 그 부지가 공공시설·연수시설·관광지의 부지와 접한 경우 시설 설치를 제한한다”고 돼 있다. 상위법보다 더 강화된 내용이다.

지자체가 상위법에 근거하지 않은 조례나 지침을 제정해 시행하는 것은 지방자치법에 위배된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연천군은 A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군의회에 폐기물처리장 건설 반대 결의문을 채택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여전히 폐기장 건설을 막고 있다. 연천군 관계자는 “군내에서 발생하는 산업 폐기물은 국내 전체 발생량의 0.1% 수준”이라며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기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폐기물 불법투기범 44% 급증
업계 관계자들은 “건설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의 인기 관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섰다간 해당 지자체장과 기초의원은 물론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다음 선거에서 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 폐기물처리업체 대표는 “권익위 주재로 조정회의를 했는데 시의원 두 명이 ‘그렇게 좋은 시설이면 당신 고향에 짓지 왜 여기에 지으려 하냐’고 말하더라”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에 민원을 제기해도 ‘건설허가는 지자체 권한이라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며 “법을 위반하지 않아도 사업을 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처리장 건설이 막히면서 폐기물 처리 비용은 올라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3~4년 전 t당 3만원 정도이던 폐기물 처리비용이 지금은 15만원으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비용 부담이 커지자 폐기물을 무단 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빈 땅이나 공장을 임차한 뒤 폐기물을 쌓아놓고 도망가는 식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폐기물 불법 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인원은 2018년 1297명에서 지난해 1862명으로 44% 증가했다.

이태훈/구은서/청주=양길성/연천=김남영/화성=최다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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