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脫원전 손실' 결국 전력기금으로 메꾼다

입력 2020-07-02 00:00   수정 2020-07-02 16:28

정부가 탈(脫)원전으로 인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손실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해 보전해주기로 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기 사용자들이 매달 납부하는 전기요금에 3.7%씩 추가로 걷어 적립하는 돈이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으로 탈원전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같은 내용의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2일 관보에 게재할 것이라고 1일 발표했다. 산업부는 오는 8월 11일까지 40일간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번 개정안은 전기사업법 제34조 ‘기금의 사용’에 항목을 하나 신설하는 게 골자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사용할 수 있는 목적을 △안전관리를 위한 사업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및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에 대한 기획·관리 및 평가 △전력산업 분야 전문인력의 양성 및 관리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에너지정책의 이행과 관련해 산업부 장관이 인정하는 전기사업자의 비용 보전을 위한 사업’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이렇게 되면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따른 한수원의 손실도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보전해줄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경북 영덕의 천지원전 1·2호기와 강원 삼척의 대진원전 1·2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계획 백지화에 따라 발생한 한수원 등 사업자의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줄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 경주 월성 1호기는 1983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2012년 30년 설계수명이 다하자 정부는 이를 2022년 11월까지 10년간 연장하기로 했다. 노후 설비 교체 등 수명 연장을 위해 투입한 안전보강 비용은 7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면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한수원은 2018년 6월 이사회를 열고 “월성 1호기는 경제성이 없다”며 조기 폐쇄를 결정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운영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국회는 작년 9월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 등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했고, 감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원안위는 작년 말 한수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계획을 승인했다.

그간 정부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축소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한수원 이사회가 경제성을 판단해 조기 폐쇄한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산업부는 “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 폐쇄를 담은 에너지전환 로드맵이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이 같은 법령 개정이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당초 전력산업기반기금은 향후 전력산업을 경쟁 구도로 개편하고 민영화했을 경우 공적 비용 보전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전력산업 개편은 없이 정부 에너지정책에 따른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쌈짓돈처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느 범위까지 손실을 보전해줄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 이후 비용보전 범위, 비용보전 절차 등 세부 내용에 대한 고시를 제정할 계획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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