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춘재, 여성 14명 살인 '처벌은 못해'"

입력 2020-07-02 14:21   수정 2020-07-02 15:33

1986년~1991년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발생해 국내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가 1년 만에 마무리됐다.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1986년 이후 34년 만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일 본관 5층 강당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춘재(57)가 14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다른 9명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 범행을 한 것을 확인해 검찰에 송치 예정이다”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춘재 범행동기
경찰은 이춘재의 범행 동기가 “욕구 해소와 내재된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살해된 피해자들 역시 대부분 성폭행 후 죽임을 당했다. 이춘재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태안읍사무소 반경 3㎞내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등 4개 읍·면에서 발생한 10건의 살인사건 모두를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1988년 9월 화성 태안읍 진안리에서 13세 박모양이 집에서 성폭행 당해 숨진 채 발견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은 미제로 남았었다. 8차 사건은 이듬해 윤모(53) 씨가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다. 윤 씨는 재심을 청구해 현재 수원지법에서 재심이 진행 중이다.

이춘재는 화성지역 10건의 살인사건 외에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 등 4건의 살인사건도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34건의 성폭행 또는 강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재조사를 위해 2019년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총 52회에 걸쳐 이춘재를 접견해 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에서 나온 이춘재의 DNA 등 증거를 제시해 14건의 살인 범행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는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중돼 욕구 해소와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재수사 단초는 DNA 분석기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해결의 실마리는 DNA 분석기술에 따른 과학수사에 있었다.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계속 보관해온 경찰의 노력도 보태졌다.

경찰은 화성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을 지난해 7월 1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DNA 검출·분석을 의뢰하는 것으로 이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사건 발생 시점과 유류품 발견 당시 환경 등을 고려해 DNA가 검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9차 사건(태안읍 병점리 야산에서 13세 김모 양 시신발견) 유류품부터 순차적으로 의뢰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9일 9차 사건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처음 검출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3·4·5·7차 사건 등 5건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 경찰은 “이춘재는 어떤 사건에서 DNA가 검출됐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임의로 범행현장과 피해자를 직접 보고 경험한 정보에 기반해 범행을 진술했다"며 "자백의 진실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공소시효 만료됐지만
경찰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이 34년 만에 규명된 만큼 이 사건의 전체 수사과정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잘잘못 등을 자료로 남겨, 책임있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는 역사적 교훈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1988년 9월 화성시 태안읍 13세 박모 양 살해사건(화성 8차)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석방된 윤모씨의 재심 절차에 지속적으로 협조하기 했다.

경찰의 재수사로 이춘재의 살인 행각은 드러났지만 모든 혐의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은 할 수 없다. 이춘재의 마지막 범행은 1991년 화성시 동탄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 권모(69)씨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2006년 4월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이와 함께 화성 8차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과 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된 경찰관 및 검사 등 8명에 대한 혐의도 공소시효가 완료돼 검찰에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 예정이다.

한편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분과 그의 가족, 그 외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손해를 입으신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수원=윤상연 기자 syyoon11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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