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증 반납하시고 이제 소지품 챙겨 집으로 가세요. 일과를 정해놓고 운동하다 보면 곧 기운을 되찾을 거예요.”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은 매일 다른 도시의 낯선 사무실을 찾아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미소와 함께 이 같은 말을 던진다. 라이언이 1년 중 집 밖에 나가 있는 날은 322일. 집보다 비행기와 낯선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만 누구보다 이런 생활을 즐긴다. 그에게 행복한 삶이란 안정적인 가정과 아늑한 집을 뜻하지 않는다. 집이란 답답한 곳이고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리는 건 한심한 일일 뿐이다.
라이언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기업의 해고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라이언의 회사 대표 크레이그 그레고리(제이슨 베이트먼 분)는 “소매업계 수입은 20% 줄고 자동차업계는 휘청거리고 부동산업계는 풍전등화야. 미국 역사상 이런 위기는 없었고 다시 말해 우리에겐 좋은 기회야”라고 말한다.
이는 미국에선 기업의 해고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노동유연성’이 높다고 표현한다. 노동유연성이 높으면 고용주가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어 노동자의 근로 안정성은 떨어진다. 반면 노동유연성이 낮으면 신규 채용이 줄어들어 청년실업률은 올라가게 된다.
<<strong>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유연성 순위를 보여준다. 미국은 OECD 36개국 중 두 번째로 노동유연성이 높은 데 비해 한국은 34위로 최하위다. 국내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노조와의 협의,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실상 정리해고가 불가능한 구조다. 한국만의 독특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즉 호봉제도 노동유연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해고는 못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성과와 상관없이 임금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경직된 노동시장은 OECD 최고 수준의 노동 시간과 동시에 최하위의 생산성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나탈리는 모든 ‘해고 전문가’가 보는 앞에서 동료 직원을 영상통화로 해고하는 시범까지 선보인다. 그러면서 업무 방식 변화가 직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크리스마스에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고 비행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싫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낙인 라이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영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우리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장의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는 일상이 됐다. 식당에 가도 주문은 키오스크로 할 수 있고 쇼핑과 은행 업무까지 모두 모바일 앱으로 이뤄진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없어진 4대 시중은행 영업점은 92개나 된다. 패스트푸드점 롯데리아와 맥도날드 매장 중 키오스크가 설치된 매장은 각각 75%와 65%에 달한다. 인건비를 줄이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려는 기업의 움직임과 대면 접촉을 꺼리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나탈리는 비대면 전환으로 회사 출장비를 85%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 출장비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가변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고정비용이 일정한 상황에서 가변비용이 감소하면 한계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strong>그래프>에서 한계비용(MC) 곡선의 기울기는 낮아진다.
일반적으로 U자형을 그리는 평균 총비용(ATC) 곡선의 최저점은 한계비용 곡선과 만나게 되는데 이를 ‘효율적 생산량’이라고 말한다. 한계비용 곡선의 기울기가 낮아진다는 건 효율적 생산량도 높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라이언은 나탈리의 제안을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한다. “자네 열정은 이해하는데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인간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고려해야지.” 보험료와 항공료를 얘기하며 나탈리의 제안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크레이그의 말에 라이언은 소리친다. “컴퓨터를 쓰기 시작하면 우리 모두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걸 모르세요?” 크레이그는 답한다. “쓸모없게 되는 건 자네지.”
‘비대면 해고’를 제안한 나탈리였지만, 자신을 따라 낯선 타지로 오게 한 남자친구에게 받은 것은 헤어지자는 ‘비대면 이별’ 통보. 설상가상으로 라이언을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해고한 사람은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결국 나탈리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한다. 나탈리가 선택한 퇴사 통보 역시 문자. ‘비대면 해고’ 방안을 극찬한 크레이그도 ‘비대면 사표’에는 “예의가 없다”며 화낸다.
결국 회사는 원래 방식대로 돌아간다. 비대면 해고 방안을 중지시키겠다는 크레이그의 말에 라이언이 묻는다. “이번 출장은 얼마나 걸리죠?” “기약 없어.” 가장 비인간적인 일인 ‘해고’마저도 비대면이 대면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해서일까. 세상에는 기술만으론 대체가 안 되는, 인간의 감성이 필요한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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