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펀드 재산 관리·평가 안했다…'옵티머스 사태' 수탁기관도 책임론

입력 2020-07-03 16:50   수정 2020-07-04 01:38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은 한국 자본시장 시스템의 약점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연 3% 수익을 주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약 5000억원을 모아 쌈짓돈처럼 빼냈다. NH투자증권 같은 펀드 판매사는 완벽하게 속았고, 펀드 수탁기관인 하나은행, 한국예탁결제원은 사실상 ‘허수아비’였다는 평가다.

펀드 피해자들은 펀드 판매사뿐 아니라 수탁기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를 계기로 펀드 수탁기관의 역할과 책임이 처음으로 도마에 올랐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2일 “사무수탁사로부터 받은 명세 내역에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돼 있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고객이 손해를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펀드 수탁은행(신탁업자)은 펀드 재산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무수탁사(사무관리사)는 펀드 재산평가 관련 모든 정보를 관리하면서 펀드 기준가 산출, 펀드 명세서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옵티머스운용은 이들의 허술한 관리 체제를 악용했다. 사무수탁을 맡은 예탁결제원은 장외 부실 사모사채를 한국도로공사 한국환경공단매출채권 등과 같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이름을 바꿔 입력해달라는 운용사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수탁은행인 하나은행은 펀드 제안서와 달리 옵티머스가 장외 부실 사모사채를 100% 편입했지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옵티머스운용은 애초 수탁은행을 맡았던 기업은행이 펀드 편입자산을 놓고 문제를 제기하자 2018년께 하나은행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들이 법적인 책임이 있는지는 자본시장법상 해석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운용사 운용이 법령이나 약관에 어긋나면 수탁은행이 이를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단순한 재산 보관 역할에 국한된 게 아니고 감시 기능이 있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이 조항에 대해 예외조항을 뒀다. 하지만 사모펀드라고 해도 수탁은행의 선관주의 의무 자체가 면제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자본시장법 244조에서 수탁은행은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바탕으로 펀드 재산을 보관 관리하고, 투자자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옵티머스 펀드 제안서에 95% 이상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담는 펀드로 돼 있는데 100% 부실 채권을 담았고 이를 묵과한 건 선관주의 의무 위반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펀드 사무수탁회사도 관리 의무가 있다. 금융투자협회 규정에선 사무관리회사는 매월 신탁회사와 증권 보유내역을 비교해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증빙자료를 보관할 의무가 있다. 이 규정을 적용한다면 예탁원은 하나은행과 매달 해당 펀드의 자산보유내역을 비교하고 검증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의 상위법인 자본시장법에선 이 규정을 투자신탁(신탁형)이 아닌 투자회사(회사형)에만 적용하고 있다. 옵티머스 펀드는 투자신탁에 해당한다. 현재 국내 펀드 90% 이상이 투자신탁에 해당돼 선관주의 의무를 놓고 법 해석이 분분하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옵티머스 펀드는 예탁결제원에 매출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유동화한 것일 뿐 실질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고 하면서 채권명과 종목코드 입력을 요구했다”며 “사무수탁사는 수탁은행과 달리 담보 계약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신탁형에 대해선 선관주의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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