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수요-공급 망가뜨리는 최저임금 급등…백수 용남이가 '취준생' 꼬리표 떼기 힘든 이유

입력 2020-07-06 09:00  


“장가 못 갔고요. 취업 준비 중입니다.”

영화 ‘엑시트’에서 대학 졸업 후 마땅한 직업 없이 백수로 살아가는 주인공 용남(조정석 분)은 어머니 고희연에 온 집안 어른께 인사를 드리면서 미리 연습한 듯한 말을 내뱉는다. 질문보다 먼저 나온 답에 상대방이 당황한 사이 용남은 술 한 잔을 따르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누나 셋인 집안에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직업도 없이 동네 바보형 취급을 받는 그의 자기방어책인 셈이다.
청년실업,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개봉한 ‘엑시트’는 대학 시절 암벽동아리 출신이자 현재 백수인 주인공이 갑자기 닥친 재난상황을 극복해가는 영화다. 942만 명의 관객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와 누나에게 구박받고, 조카도 창피하다며 피하는 삼촌인 용남이 가지는 보편성 때문이다. 지난 2월 말 기준 한국의 실업률은 4.1%다. 그중에서도 청년실업률은 9.0%에 달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100명 중 9명은 용남과 같은 백수로 지내는 셈이다. 실업률은 만 15세 이상의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이 중 청년실업률은 29세 이하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을 말한다.

오랜 취업 준비에 지친 젊은이들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눈을 돌렸을 때 청년실업률은 낮아질 수 있다. 통계청은 고용동향을 집계할 때 근로형태를 가리지 않고 수입을 목적으로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했다면 모두 취업자로 분류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는 순간 실업자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취업에 실패해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청년들은 수시로 관두고 다른 아르바이트로 옮기는 단속적 근로자일 뿐 오롯이 취업자로 보긴 어렵다. 경기침체가 심화하는 과정에서 실업률이 오히려 떨어지고 실업률이 실제 경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들은 어머니(고두심 분)의 고희연을 축하하러 컨벤션센터 ‘구름정원’을 찾는다. 용남은 우연히 그곳에서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첫사랑 의주(임윤아 분)를 만난다. 그는 차마 백수라고 말하지 못하고 벤처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잔치가 벌어지는 내내 의기소침하게 사람들을 피하는 용남의 모습은 이 시대 청춘들의 고단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청년들의 고질적인 ‘마찰적 실업’
용남과 같은 청년들의 실업률이 평균보다 높은 이유는 이직하는 과정 혹은 졸업 후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잠시 동안 있는 ‘마찰적 실업’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남처럼 졸업 후 몇 년씩 장기 실업 상태인 것은 경제구조의 변화로 인해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 조건이 달라짐으로써 노동력과 일자리가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실업’에 더 가깝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처럼 기업들이 찾는 전공, 능력을 갖추지 못한 취업준비생이 많은 것도 어찌 보면 구조적인 문제다.

청년들은 기존 시장 참여자에 비해 생산성도 떨어진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의 한계생산가치를 고려해 채용을 결정한다. 노동이 증가할수록 한계생산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에 이 가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임금을 정한다. 청년들의 생산성이 이 임금 수준보다 낮다면 기업이 청년을 선택할 이유는 줄어든다.
최저임금제, 노동조합은 기득권 울타리
케인스 학파에서 주장하는 ‘효율성 임금가설’에서 보듯 기업 스스로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을 생산성 수준 이상으로 높여주기도 한다. 실질임금이 노동자의 생산성과 근로의욕을 좌우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실질임금이 높으면 이직률을 낮춰 숙련된 기술자를 장기간 보유할 수 있고, 임금이 높으면 태업으로 인한 기회비용도 높아져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억제할 수 있다.

또 노동 생산성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할 때 효율성 임금이 노동의 평균적인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기업이 평균적인 생산성에 따라 실질임금을 지급하면 평균 실질임금 이상의 생산성을 지닌 근로자는 떠나고, 낮은 생산성의 근로자만 남는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는 셈이다.

노동조합 결성에 따른 내부자·외부자 사이의 임금차이 발생, 최저임금제 시행 등도 청년 실업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격이 유연하게 변하지 못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인공지능(AI)과 스마트 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마찰적 실업보다 구조적 실업이 더 많아질까.
②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초래하는 최저임금제가 기존 노동시장 진입자보다 취업준비생의 취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③ 중소기업은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데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 더 좋은 조건만 바라보고 마찰적 실업상태를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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