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의약품(API)과 화장품 원료 생산 회사로 알려진 대봉엘에스를 방문했습니다. 이 회사는 제약 회사들이 합성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원료를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화장품 분야도 마찬가지 입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원료를 생산, 개발해 화장품 회사에 납품합니다. 다만 단순 위탁 생산이 아니라 원료 개발 등을 대신하고 있죠.
화장품 회사 이니스프리에서 물 대신 유기농 제주 녹차수를 넣어 만든 ‘그린티 퓨어 라인’ 화장품이 대표적입니다. 제주도에 연구개발(R&D)센터를 두고 있는 이 회사가 직접 개발한 원료였죠.
원료 납품 사업 중심이었던 이 회사의 무게 중심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대봉엘에스가 83%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피엔케이피부임상연구센타(피엔케이)를 통해서죠. 이 회사는 시중에 나와있는 화장품의 성능을 미리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객관적인 지표로 인증해주는 회사입니다.
신약 개발을 위해 임상을 대행해주는 CRO 회사와 비슷합니다. 다만 화장품은 임상을 반드시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제품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는 것입니다.
피엔케이 설립을 주도한 박진오 대봉엘에스 대표는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될 수도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박 대표는 이 회사 설립 과정에서 피부 미백, 수분량 등 각종 피부과 평가 지표를 개발했습니다. 첨단 측정 장비를 도입해 연간 임상 수행 건수가 3000건에 달하죠.
박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설명합니다. 고객들은 감염을 우려해 매장을 가지 않고 온라인에서 화장품을 사는 일이 늘었습니다. 직접 발라 볼 수 없으니 제품 후기나 제품 광고에 의존을 하게 됩니다.
상품 리뷰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더 신뢰하는 것은 제품의 효능과 안정성 데이터입니다. 그런데 화장품 옆에 나와있는 광고 문구들을 넣기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제품 효능을 광고하기 위해선 객관적이고 타당한 방법으로 시험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표시·광고 실증제 때문이죠. 피엔케이는 화장품 제품 효능을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줍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T사의 제품 광고를 보면 ‘피부 깊은 보습’ ‘피부 수분량 개선’ 등의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이런 화장품의 효과를 마음대로 광고하면 안됩니다. 인증된 데이터가 필요하죠. 이 회사는 2019년 6월 피엔케이로부터 연구 결과를 받았네요. T사가 광고한 내용이 임상시험 결과 입증이 됐다는 증명서도 첨부돼 있습니다.
대형 화장품 회사들은 회사 내 임상시험 센터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시험한 자료를 써야 한다는 표시·광고 실증제 규정 때문에 자사 제품의 임상시험 결과를 쓰지 못합니다. 업종 내 진입장벽이 있어 안정적으로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죠.
박 대표는 의사(연세대 의대) 출신 경영자입니다. 2세 경영인으로 2001년 의사 면허를 딴 직후 입사했죠. 1986년에 설립된 이후 다소 정체돼 있던 회사는 박 대표가 부임한 이후 사세를 넓혔습니다. 코스닥 상장(2005년)도 박 대표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피엔케이는 2010년 중앙대 의학연구소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설립한 결과물입니다. 기업과 대학병원 의과대연구소가 함께 설립한 피엔케이는 대봉엘에스의 원료 제조 기술 노하우를 접목해 피부과 전문 의약품과 화장품 임상시험, 피부조직세포 연구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박 대표는 “자회사라고 해서 소홀히하는 건 없다. 자회사라도 실적과 기업 가치가 높아진다면 언제든 그룹의 주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최근에는 미백, 피부 재생, 주름 개선 등 의학적으로 검증된 기능성 화장품과, 의약품 수준의 더마코스메틱(dermocosmetic) 시장이 성장하면서 피엔케이의 수요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125억원, 당기순이익은 54억원입니다. 매출 대비 순이익이 43%로 상당히 높죠. 올해엔 매출이 180억원으로 늘 전망입니다. 화장품 관련 임상시험 수탁업체 중 점유율 1위죠.
박 대표는 “지난 5년 동안 연 28% 정도 성장을 해온 회사”라며 “건강기능식품과 미용 등 다양한 분야로 업무 영역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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