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타트업에 공격적으로 투자
구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LG그룹의 ‘실리콘밸리 드림’이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5월 출범한 LG테크놀로지벤처스가 보폭을 넓히며 현지 유망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5개 계열사가 출자한 4억2500만달러(약 5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LG그룹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유망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현재까지 18개 스타트업에 4600만달러(약 550억원)를 투자했다. 회사 조직은 ‘외인부대’에 가깝다. 삼성벤처투자 미주본부장 출신인 김동수 대표가 미쓰이인베스트먼트에서 경력을 쌓은 안술 아가왈 이사, 밴드갭벤처스 출신 마이클 팔콘 이사 등 글로벌 스타트업 전문가 16명을 이끌고 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바이오 기업 등으로 채워져 있다. LG그룹이 꼽고 있는 미래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업체들에 우선적으로 투자했다는 얘기다.
올 들어서는 AI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AI 관련 산업이 각광받고 있어서다. ‘H2O.ai’가 대표 투자 사례로 거론된다. 데이터를 가공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려면 그 전에 데이터를 분석하기 좋게 만드는 모델링 작업을 해야 한다. H2O.ai는 길게는 2~3주 걸리는 데이터 모델링 시간을 5~10시간으로 단축하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딥러닝 보안 솔루션 기업 ‘딥인스팅트’, 제조업에 특화한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마키나락스’ 등도 올해 LG테크놀로지벤처스가 투자에 나선 AI 기업으로 꼽힌다. 김 대표는 “당분간 잠재력을 갖춘 AI 기술 스타트업 발굴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CVC 운영이 가능해지면 미래 신기술에 목말라 하는 LG그룹의 행보가 빨라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CVC 허용을 전제로 LG그룹이 유망 스타트업을 세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벌써부터 구체적인 기업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LG그룹이 글로벌 유망 스타트업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배경엔 구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철학이 있다. 지금까지 해온 사업만 고집해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구 회장 취임 이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구 회장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LG이노텍 등에 CSO(최고전략책임자) 조직을 구성한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기존 사업 중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업을 정해 폐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끼워 넣는 것이 CSO 조직의 역할이다. LG 관계자는 “각 사 CSO 조직엔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며 “LG그룹의 포트폴리오를 경쟁력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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