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김주형(18)에게는 이글만이 남은 선택지였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경기를 먼저 끝마친 이지훈(34)을 연장으로 끌고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18번홀(파5)에서 친 김주형의 두 번째 샷은 2온에 성공하며 핀 뒤 3m 부근에 멈춰섰다. 이 퍼트가 들어가면 연장전. 훅 라인의 까다로운 퍼트는 그대로 홀로 빨려들어갔다. “와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연장전 무대가 주변의 함성과 함께 펼쳐졌다. 이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어린 추격자는 연장무대까지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쇼케이스로 만들려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8번홀에서 진행된 이지훈의 연장 3m 버디 퍼트는 에스(S)라인을 그리며 홀로 찾아들어갔다. 하지만 김주형은 홀 1m 근처에 어프로치 샷을 붙여놓고도 버디 퍼트를 놓쳤다.
이지훈이 코리안투어 2020 시즌 개막전을 제패했다. 약 3년 만에 나온 통산 2승째.
이지훈은 5일 경남 창원시 아라미르 골프앤리조트 미르코스(파72·7245야드)에서 치러진 코리안투어 2020 시즌 개막전 우성종합건설 아라미르CC 부산경남오픈(총상금 5억원·우승상금 1억원) 최종일 4라운드를 9언더파 63타로 마쳤다. 전반에 4개홀 연속 버디(2~6번)를 잡아낸 뒤 후반에도 5개홀 연속 버디(10~14번)를 이어갈 정도로 샷감과 퍼트감이 날카로웠다.
4라운드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이지훈은 마지막홀 이글을 터뜨리며 추격해온 김주형을 연장 첫홀에서 뿌리치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2017년 9월 카이도 제주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올린 지 2년9개월여 만에 수확한 두 번째 트로피다. 3라운드까지 그의 성적은 선두 김주형에 5타 뒤진 12언더파 공동 14위였다. 대역전극을 완성한 힘은 평정심이었다.
이지훈은 “오랜만의 우승이라 얼떨떨하다. 기대 없이 편안하게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첫 우승은 최종라운드가 취소되면서 나왔는데, 이번엔 제대로 우승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지훈의 고향은 대회장이 있는 창원에서 멀지 않은 부산이다.
최연소 코리안투어 우승 기록에 도전했던 김주형은 연장 패배로 대기록 수립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하지만 막판 이글을 터뜨리며 화끈한 추격전을 펼친 것만으로도 ‘주연 같은 조연’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증명해냈다는 평가다. ‘골프 노마드’로 태어나자마자 호주 태국 필리핀 등을 떠돌며 프로골퍼인 아빠로부터 골프를 익힌 한국 골프의 기대주다. 16세에 프로 데뷔한 그는 현재 아시안 투어 1승 기록을 들고 있다.
지금까지 최연소 코리안 투어 우승 기록은 이상희(28)의 만 18세 14일. 이상희는 2011년 NH 농협오픈에서 19세 6개월 10일의 나이로 우승해 이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2002년 6월 21일생인 김주형은 기록을 깨뜨릴 기회가 아직 1년6개월가량 남아 있다.
마지막까지 선두를 추격했던 지난해 코리안 투어 대상 수상자 문경준(38)은 18번홀에서 버디 1개를 추가했지만 연장전에는 합류하지 못한 채 경기를 마무리했다. 20언더파 공동 3위. 마지막날 7타를 줄인 테리우스 김태훈(35)이 문경준과 나란히 3위 성적을 받아들었다.
선수회 회장 홍순상(39)은 1, 2라운드 단독 선두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1라운드에서 코스레코드(10언더파)를 작성하는 등 무결점 샷을 내세워 16타를 줄였던 터라 아쉬움이 더 짙게 남는다. 3라운드에서 1타를 잃으며 뒷걸음질 친 게 추격의 빌미가 됐다. 4라운드에서 2타를 줄였지만 승부는 이미 후배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최종합계 17언더파 공동 13위. 홍순상은 “대회가 무사히 열린 것만도 다행인데, 극적인 연장 승부로 화려한 마무리까지 연출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 메이저 챔프 양용은(48)도 마지막날 2타를 덜어내 최종합계 10언더파 공동 45위로 대회를 끝마쳤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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