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기여 주장은 고대 올림피아 경기 중 휴전이 이뤄졌던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다. 그 후에도 스포츠가 전쟁을 일시나마 중지시킨 사례는 드물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성탄절 영국군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하고 축구시합을 했다. 나이지리아의 내전인 비아프라 전쟁 당시 양측 전투원들은 축구황제 펠레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틀간의 휴전을 선포했다. 2005년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 예선에서 카메룬을 꺾고 본선 진출을 확정짓자마자 코트디부아르 주장 드로그바는 동료 선수들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전 종식과 평화를 호소했다. 이 장면은 코트디부아르 전역에 생중계됐다. 총성은 멈췄고 평화회담이 시작됐다.
스포츠가 평화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미·중 간의 ‘핑퐁외교’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핑퐁외교는 작은 사건에서 시작했다.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 미국 선수가 중국 선수단 주장에게 진주 양식장으로 가는 중국팀 버스에 동승할 수 있는지 물었다. 중국 측 동의로 미국 선수는 버스에 탈 수 있었고 그는 감사의 표시로 티셔츠를 선물했다. 중국팀은 답례로 손수건을 선물했다. 다음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국 선수단이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 선수단을 중국에 초청한 것.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과 협의 후 미국팀이 중국을 방문, 친선 경기를 가짐으로써 양국은 소통과 화해의 문을 열었다. 핑퐁외교는 국제정치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스포츠 외교로 평가받는다.
한국 외교사에도 사례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냉전 종식에 기여한 대회로 평가받는다. 당시 미수교국인 소련과 중국 외에도 10여 개 동유럽 국가가 참가함으로써 동서 화해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북방외교의 토대를 쌓았다.
스포츠가 항상 국가 간 우의와 평화에 기여하는 것만은 아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소위 ‘축구전쟁’을 벌였다.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 최종예선에서 온두라스가 2-3으로 패하자 격분한 군중이 충돌한 것이다. 두 나라는 국교를 단절했고 결국 100시간의 전쟁을 벌였다. 1990년 유고 자그레브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간 축구경기 역시 유혈폭력으로 중단됐다. 이후 양국관계는 날로 악화돼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이 스포츠는 평화의 계기도, 전쟁의 도화선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가 평화나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다. 정치적 의지가 있으면 스포츠를 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상징 조작을 통해 행해지는 외교는 때때로 미묘하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스포츠가 비공식 채널로 자주 활용되는 것은 정치색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전쟁의 경우도 근본 원인은 축구가 아니었다. 당시 많은 엘살바도르 농민이 온두라스로 월경해 무단 경작을 하면서 악화됐던 국민 감정이 축구시합을 매개로 분출된 것이다.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반쪽대회로 치러진 것도 동서 간 정치적 대립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관계를 변화시켰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최악의 상황에 처했던 남북관계가 반전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기회의 창은 오래가지 않았고 한반도에는 다시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대화의 단초를 제공하고 관계 복원의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었어도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본질은 북한의 정치적 결단이다. 핵문제를 해결하고 정상 국가가 됨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는 한 스포츠가 가져다준 기회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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