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멀리 '헐크 실험' 증명한 디섐보…골프역사 바꾸다

입력 2020-07-06 18:00   수정 2020-10-04 00:02

‘헐크’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사진)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로켓모기지클래식(총상금 750만달러)에서 우승했다. 최종합계 23언더파 265타 성적을 적어내 2위를 3타 차로 따돌렸다. 압도적인 장타 덕을 봤다. 가장 멀리 날아간 드라이버가 377야드.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는 350.6야드였다. 2003년부터 비거리 등 기록을 재는 샷링크 도입 후 PGA투어 평균 비거리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타이거 우즈(45·미국)가 2005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세운 341.5야드다.

디섐보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135만달러(약 16억원)를 챙겼다. 2018년 11월 슈라이너스아동병원오픈 후 1년8개월 만에 거둔 통산 6승째. 시즌 상금 449만8205달러를 모아 이 부문 2위로 도약했다. 코로나19 휴식 후 재개한 4개 대회 성적은 공동 3위-공동 8위-공동 6위-우승이다.
“멀리, 똑바로”…‘퍼펙트 골프’의 힘 입증
‘근육질에 집착한다’던 의심의 눈초리는 이제 경이와 찬사로 바뀌고 있다. 골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힌 ‘혁신’이라는 평도 나온다. 앞서 골프에서 금기시되던 근육질 몸매에 대한 편견을 우즈,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 브룩스 켑카(30·미국) 등이 실력으로 보여주며 무너뜨렸다면, 디섐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들보다 1.5배는 돼 보이는 덩치로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냈다는 분석이다. 이미 여러 골퍼에게 정복당한 300야드를 넘어 디섐보가 ‘400야드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는 이번 대회 1라운드 17번홀(파5)에서 티샷으로 377야드를 날렸다. 그가 친 공의 비행 속도는 196마일에 달했다. ‘마(魔)의 200마일’이 깨질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미국 골프채널은 “맞든 아니든 디섐보는 스스로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와 우승 싸움을 했던 매슈 울프(21·미국)는 “디섐보가 너무 잘 쳤다”고 했다. 케빈 키스너(36·미국)는 “디섐보는 골프에서 이기는 방식을 바꿔놨다”며 “그의 도전과 노력은 경탄스럽다”고 했다.

디섐보는 골프장 설계자의 의도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그는 티샷이 떨어지는 예상 지점에 놓여 있던 벙커를 훌쩍 넘겨 공을 떨어뜨렸다. 가까이 보낸 만큼 쇼트 게임도 수월했다. 이번 대회 ‘퍼팅으로 얻은 이득 타수’ 부문에서도 전체 1위(7.831타)를 차지했다. 샷링크 도입 후 드라이브 비거리와 퍼팅 두 가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선수는 디섐보가 유일하다. 그만의 ‘카지노 불패 이론’이 통한 것. 많은 도박꾼이 모여도 확률에서 유리한 ‘하우스’가 무조건 승리한다는 이론이다. 디섐보는 멀리 쳐 놓으면 다음 샷이 쉬워져 확률 싸움에서 그가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최종 라운드에서 평균 360야드를 치며 버디 8개(보기 1개)를 낚아챘고 울프의 추격을 가볍게 따돌렸다. 울프는 이번 주 평균 326.4야드를 날리고도 디섐보 앞에선 무기력했다.

디섐보는 “남들과 다른 길을 추구했기에 내게는 뜻깊은 우승”이라며 “신체에 변화를 줬고 골프 경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꿨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승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 실험 비웃은 모든 이를 사랑한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벌크업’을 시작해 코로나19 휴식 기간 확 몸을 불렸다. 물리학을 전공했고 같은 길이의 아이언을 사용하는 등 물리학을 골프에 도입해 ‘필드 위 물리학도’로 불리는 그다. 비거리 증대를 위해 에너지원인 근육량을 키우는 벌크업은 그의 ‘2차 프로젝트’였던 셈. 작년 195파운드(88㎏)였던 체중을 239파운드(108㎏)까지 늘렸다.

무게의 대부분을 지방이 아니라 근육으로 채웠다. 한창 운동할 때는 하루 최대 6000~7000㎉에 달하는 식사를 하면서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 8마일(12.74㎞)의 유산소 운동을 빼먹지 않고 했다. 적정 무게에 도달한 뒤에는 하루 3000~3500㎉를 섭취한다. 식단을 들여다보면 프로틴 셰이크 7잔, 달걀 4개, 스테이크, 감자 등이다. 덕분에 그는 몸무게 1㎏ 당 평균 1야드의 비거리를 늘렸다.

트레이드마크인 ‘트위스트 스윙’을 구사하는 울프는 디섐보와 흥미로운 경합 끝에 준우승(20언더파)을 차지했다. 마지막 7개 홀에서 버디 4개를 잡았지만 경기를 뒤집기엔 부족했다. 한국 선수로는 이경훈(29)이 10언더파 278타 공동 45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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