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등단한 이 시인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최근 현대시의 경향성을 따르지 않는다. 이번 시집에서도 삶의 이치를 말없이 견뎌내는 자연과 동물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 속에서 나타나는 생명의 순환과 함께 그 안에서 나타나는 존재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이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사람과 사물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일이 시라고 믿었다”고 했다. ‘모래알이 휘발되도록 빛을 숨겨두는 사막’(‘발’)이나 ‘우리에게 피를 주고 공중을 높이 치켜든 저 피자두나무’(‘피자두’) 같은 시적 표현에서 보여지듯 이 시인의 시는 자연을 통해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치유의 시로 비쳐진다. 시 ‘침보라소’에선 ‘얼음은 아픈 곳을 낫게 해 주는 신앙/짐승과 사람을 새것으로 반짝, 바꿔 놓는다고 했네’라고 고백한다.
그의 시 대부분은 서정시지만 단순히 자연을 예찬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시인이자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된 희곡 작가다. 시집에 수록된 시 상당수는 그의 희곡작품의 주된 주제의식인 ‘존재의 고독’을 자연에서 찾아낸다. 표제시인 ‘나무는 나무를’에 등장하는 ‘나무는 나무를 지나 죽고,/죽은 후에야 그루터기란 이름을 가진다고 해요//첫 서리에 제 혼이 핏빛으로 지나간다고 잎을 벗죠’라는 시구는 시인이 생각하는 ‘자연의 고독’을 잘 나타낸다.
이번 시집에선 ‘붉은빛은 끝도 없이 목 가진 것들을 비틀어 꺾는다’(붉은빛의 거처), ‘땅 위에 사는 것들은 팥의 껍질과 붉은빛이/오장육부의 피를 틔우고 귀신을 쫓는다고 말하죠’(팥) 등 유독 ‘붉은빛’의 색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붉은 빛들은 살아 움직이거나 뜨겁게 불타는 것 같은 1차원적 이미지가 아니라 죽은 것들이 새 생명을 얻거나 정화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태의 섭리’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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