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가 탄 구급차를 막아 이송을 지체시킨 택시기사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기사가 발언한 "죽으면 책임질게"라는 말이 반어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발언이 사망가능성을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었단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기사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에는 7일 오전 9시20분 기준 60만1060명이 동참했다.
작성자는 "당시 어머님의 호흡이 옅고 통증이 심해 응급실에 가려고 사설 응급차를 불렀다"며 "가고 있는 도중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다 영업용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응급차 기사분이 내려서 택시기사에게 '응급환자가 있으니 병원에 모셔드리고 사건을 해결해드리겠다'고 했다"며 "그러자 기사는 '사건 처리를 먼저 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고 적었다.
작성자는 "응급차 기사가 재차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지만 기사는 반말로 '지금 사건 처리가 먼저지 어딜 가느냐, 환자는 내가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기사는 응급차 기사에게 '저 환자가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 너 여기에 응급환자도 없는데 일부러 사이렌을 켜고 빨리 가려고 한 게 아니냐'고도 했다"며 "심지어 응급차 뒷문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5시간 만에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들끓자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전날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현재는 (택시 기사가)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이 돼 있지만 형사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며 "언론과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혹은 '업무방해' 등 여러 가지 사안이 거론되는데 이를 전반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공식 언급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택시기사가 언급한 "저 환자가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라는 말 때문에 도리어 혐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날 뉴시스의 보도에 따르면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택시기사의 발언은 죽으리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교통사고 전문 로펌 엘엔엘(L&L)의 정경일 대표변호사도 "택시운전 기사의 발언은 한국인 특유의 반어법으로 보인다"며 "미필적 고의를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김 연구위원과 정 대표변호사는 택시기사에게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김 연구위원은 "윤리적 비난이 매우 높은 사례라고 해서 형법으로 모두 처벌할 수는 없다"면서도 "사설 구급차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업무방해 혐의 외에도 강요와 폭행 혐의가 적용될 수 있도록 면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해당 사건에 대한 법조계의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서 향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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