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이번 방한 일정에서의 대북 접촉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대한 의지는 드러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북 대화가 다시 급물살을 탈지 관심이 모인다.
비건 대표는 8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나와 만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최근 보도를 봤는데, 우리는 북한과의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이번주 방한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와 동맹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뒤이어 “한 가지 또 매우 명확하게 밝히고 싶다”며 “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년간 협의해온 것들을 지침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인사말과 형식적인 외교적 수사로 채워지던 평소와 달리 이날 발언은 이례적이었다. 이번 방한 일정을 앞두고 나온 북한의 대미 담화와 일각에서 제기된 선거용 이벤트성 미·북 대화 가능성 등 비관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따르면 비건 대표가 준비했던 초고에는 최선희와 볼턴 전 보좌관을 가리켜 ‘둘 다 뭐가 가능한지 창의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부정적이고 불가능하다는 데만 초점을 맞춘 구닥다리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 문구까지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북 대화 재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김정은이 이 문제들에 대해 협상할 나의 카운터파트를 임명할 때, 우리가 준비됐음을 알게 될 것”이라며 “대화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대화 없이 행동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방송된 그레이TV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의 제3차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만약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날 비건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남북협력 구상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은 남북협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이는 한반도를 보다 안정적 환경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도 “비건 대표는 북한과 대화 재개 시 균형 잡힌 합의를 이루기 위해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조속한 시일 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도에 대해 심도 있게 협의했다”고 전했다.
한편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 7일 긴급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일정에 없던 한·미 군 수뇌의 회동을 놓고 군 안팎에선 다음달 한미연합훈련 시행 문제 등을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미는 내달 중순께 예상되는 하반기 연합지휘소훈련 방안을 협의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축소 시행 또는 연기, 유예 등과 관련해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임락근 기자/워싱턴=주용석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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