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가 아름답게 각색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이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아직 공교육이 확립되기 전, 아이들을 순화할 목적으로 가정교사의 손에 동화가 동원된 것이다. 샤를 페로 동화집으로 대표되는 동화책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자식에게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민담과 전설 같은 것 말이다.
생각해보면 한국 전래동화도 꽤 잔혹하다. 엄마를 잡아먹고 난 호랑이가 엄마로 위장해 남매를 습격한다. 장화와 홍련은 계모에 의해 목숨도 잃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는 원래 잔혹하고 무서운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동화는 왜 이렇게 잔혹할까? 아니, 왜 할머니들은 아이에게 무섭고 가혹한 이야기를 밤마다 들려줬을까?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브루노 베텔하임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아동 정신분석학자는 전래동화가 성장기의 두렵도록 빠른 성장의 충격을 비유한다고 말한다. 엄마의 젖을 떼고, 기저귀를 벗고, 혼자 심부름을 가는 것 자체가 굉장한 충격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변화무쌍하고 가혹한 한 편의 이야기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하인을 내보내 대신 여행하게 한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에 상상을 보태 유람기를 완성한다. 성장도 비슷하다. 전래동화는 그런 점에서 아직 가보지 않았으나 곧 닿게 될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같다. 아이에게 어른은 가보지 않은 여행지다. 그러니 잔혹 동화는 여행 전 맞는 백신인 셈이다.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의 첫 번째 영화는 ‘빈센트’라는 단편 흑백 애니메이션이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소년은 더 무서운 괴물을 스스로 창조해 공포와 싸운다. ‘빈센트’는 팀 버튼의 어린 시절을 품고 있다. 무서운 세상을 견디기 위해 창작해낸 더 무서운 이야기, 그게 바로 잔혹 동화다.
동화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범죄 이야기나 스릴러를 본다면 그건 잔혹한 걸 좋아해서라기보다 그래야 이 무서운 세상을 더 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라도 세상보다 더 무서운 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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