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케빈 메이어 틱톡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도 전자정보기술부(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급히 편지를 보냈다. 인도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틱톡 서비스를 차단하자 'VIP 고객'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될 처지에 놓이게 돼서다. 인도 국민의 틱톡 다운로드 건수는 6억6500만건으로 전 세계의 30%에 달한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29일 중국 정부로부터 국민들의 주권, 안보, 공공질서를 지키기 위해 틱톡을 비롯한 59개 중국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사용을 금지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인도 정부는 이후 곧바로 서비스를 차단했다. 명목은 중국 기업들이 인도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이유였지만 이면에는 최근 인도와 중국 간 '국경 충돌'에 따른 유혈 사태에 항의하는 차원이었다.
세계화 이후 국경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국적이 중요하지 않아 보였던 IT기업들이 더이상 정치적인 이슈를 무시하고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WSJ는 "기업들은 이제 어떤 시장으로 갈지, (정부와) 얼마나 타협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고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달 초 줌에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1주년'을 추모하는 온라인 회의 4건과 이 모임을 주도한 4명의 계정을 폐쇄하라고 요청했다. 미국 내 인권 활동가들의 모임인 '휴머니터리안차이나'는 지난달 초 톈안먼 민주화 기념 관련 화상 회의를 진행했는데 일주일 뒤에 이 계정이 폐쇄됐다고 했다.
줌은 계정 폐쇄 조치와 관련한 이메일 성명을 통해 "회의가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열리면 그 나라의 참석자들은 각 지역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며 휴머니터리안차이나 계정 폐쇄가 그 지역 법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줌은 얼마 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사과했다. 줌이 폐쇄 조치한 4개의 계정 중 중국이 아닌 미국과 홍콩 거주자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줌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3명의 계정은 복구했다"고 했다.
줌의 '국적'은 복잡하다.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창업자가 중국 산둥성 출신의 중국계 미국인 위안정(袁征·에릭 위안)이다. 위안정은 1997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2011년 실리콘밸리에서 줌을 창업했다. 하지만 줌 엔지니어 상당수가 중국에 있는 사무실에서 원격으로 일한다. 미국 사회가 위안정에게 '중국 정부의 스파이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정부 및 의회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에 이어 줌을 두 번째로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위안정 CEO는 최근 "미국 이용자의 정보는 절대 중국 정부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성명 발표와 함께 미국 내에 연구개발(R&D) 센터 설립 방침을 알리는 등 중국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줌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대유행) 이후 화상회의 수요가 늘면서 회원수가 최근 4달간 3억명이 늘었다.
틱톡은 모회사가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중국 정부가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1일부로 전격 시행된 홍콩보안법에 따라 틱톡이 홍콩 정부가 요청할 경우 이용자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자 가뜩이나 '중국 정부와의 커넥션' 의심을 받는 틱톡이 아예 홍콩에서 발을 뺀 것이다.
미국 정부는 틱톡이 이용자 개인정보를 수집해 홍콩 시위와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 등의 내용을 검열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사생활 정보를 중국 공산당 손아귀에 넘기고 싶으면 그 앱(틱톡)을 다운로드받기만 하면 된다"고 저격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와 함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이유로 틱톡을 포함한 중국 소셜미디어 앱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틱톡은 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이 기술의 '국적'이 더 불분명해서다. 15초 분량의 동영상을 배경음악, 특수효과, 문자 등과 함께 제작해 공유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인 틱톡은 중국 IT기업 바이트댄스가 개발했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중국인 장이밍(張一鳴)이다. 바이트댄스는 이 서비스를 중국 내에서는 '더우인'이라는 별도의 플랫폼으로 운영하고, 해외에선 '틱톡'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한다. 서버를 분리해놓은 것이다.
틱톡은 미국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미국에, 아시아 이용자의 정보는 싱가포르 서버에 저장한다. 틱톡이 "인도 내 틱톡 이용자 정보는 싱가포르에 있는 서버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 통제 아래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김영남 틱톡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이용자 정보는 서버를 두고 있는 각국 법에 따라 운영되며 중국 정부가 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했다.
각국 정부가 틱톡 경계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이 앱의 확산세가 무서울 정도로 빨라서다.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수가 20억회를 넘었다. 전 세계 이용자만 10억명, 미국에서만 2400만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서도 300만명의 이용자가 틱톡을 쓰고 있다. 500만명인 국내 10대 청소년의 절반을 넘는 숫자다. 세계 최초 '헥토콘'(기업 가치 100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평가된다.
샤오미는 최근 인도 내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회사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착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인도에서는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반중 시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기업인 샤오미, 비보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30%와 17%의 시장 점유율로 1,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도 피해를 보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인도 내 아이폰 생산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인도에서는 폭스콘 등 애플 협력사들이 아이폰 보급형 제품을 생산 중인데, 인도 정부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선적 검수를 까다롭게 진행하면서 일부 부품들이 원만히 수입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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