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사진)이 9일 실종돼 경찰이 수색에 나섰다. 전날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시장이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됐다. 하지만 박 시장 실종이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17분께 박 시장의 딸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병력 2개 중대와 드론, 경찰견 등을 투입해 박 시장의 소재를 추적 중이다. 서울시119 특수구조단 소속 구조대원 11명과 성북소방서 인원 25명, 지휘차 1대, 펌프차 2대, 구급차 2대도 동원됐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10시44분께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시장 관사를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외출 당시 검은 모자를 쓰고 어두운 색 점퍼, 검은 바지, 회색 신발을 착용하고 검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후 5분쯤 뒤 인근 주민센터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포착됐다. 경찰은 박 시장의 휴대폰을 추적한 결과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서 발신음이 꺼진 것을 확인했다.
한편 박 시장의 비서로 근무했던 한 여성이 전날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시장을 위력에 의한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수년간 지속적으로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당했으며 시청 내에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고 밝혔다. 또 박 시장이 업무시간에 집무실에서 성희롱을 했고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음란한 문자 등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이로 인해 정신적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박 시장에 대한 소환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측은 “박 시장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근하지 않았다”며 “오늘 있었던 일정도 모두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당초 이날 오후 4시40분 시장실에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면담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피해자 A씨의 고소장에 따르면 박 시장은 2016년 이후 집무실에서 A씨를 지속적으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했다. 집무실 내부에서 몸을 만지거나, 집무실 내부에 있는 침실에 들어오길 요구하고 손을 잡으며 안아 달라고 했다. 또 박 시장이 퇴근 후 수시로 텔레그램으로 본인의 속옷 차림 등 음란한 사진과 성희롱성 문자를 보냈으며 A씨의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박 시장은 향후에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화방을 삭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한다.
A씨는 서울시청의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완곡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으나 박 시장의 성적 수치심을 주는 대화는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최근 사직한 후 정신과 상담 등을 받던 중 엄중한 법의 심판과 사회적 보호를 받는 것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선결돼야 한다고 판단해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고소장이 접수됨에 따라 고소인 측과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사실 확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피소와 실종 간에 연관성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에 박 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은 이날 오후 5시17분이다. 경찰과 소방대원 780여 명이 야간열감지기가 장착된 드론 6대, 수색견 9마리를 동원해 철야 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박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음이 끊어진 공관 일대를 집중 수색하고 있으나 박 시장의 소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설도 돌았으나 경찰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날 오전 10시40분쯤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부득이한 사정으로 (김 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이 취소됐음을 알려드리니 양해를 바란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이 출근을 못하겠다고 해서 일정을 모두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측근들은 최근까지 박 시장이 종적을 감출 정도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이 불과 사흘 전인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조직개편을 비롯한 민선 7기 후반기 청사진을 발표한 데 이어 8일엔 2조6000억원을 들여 ‘서울판 그린뉴딜’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최근 정무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차기 대선 도전을 위한 준비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여당에서 서울시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며 박 시장이 압박을 받았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것이 박 시장 실종의 직접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란 게 중론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간부들과의 회의에서도 평소와 같이 여러 가지 업무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며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감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당분간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박 시장을 대신해 권한대행을 맡는다. 서울시장 자리가 권한대행체제가 된 것은 2011년 오세훈 전 시장의 중도 하차 이후 9년여 만이다. 서울 시민들은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가회동에 사는 한 주민은 “박 시장이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제발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남영/최다은/하수정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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