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저성장에도 엔화 가치는 '탄탄'…두 얼굴의 일본, 경제대국 계속 유지할까

입력 2020-07-13 09:00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 경제 이야기입니다. 일본 경제는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늘 시들시들한 모습인데요. 또 다른 한편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인 엔화로 인해 일본은 가장 안전한 투자의 도피처가 되곤 합니다.
오랜 저성장으로 중국에 추월당한 일본
시들시들한 모습부터 살펴볼까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6.2%로 전망했습니다. 소득이 6%나 줄어든다는 말이죠. 블룸버그의 예측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2분기, 즉 4월부터 6월까지의 성장률을 -21.5%로 내다봤습니다. 20% 넘게 소득이 감소한다면 거의 재앙 수준이죠. 여러 해 동안 저성장이 계속돼 온 뒤라 고통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2000년 이후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일본이 최하입니다. 대부분 2% 아래이고 마이너스일 때도 제법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던 경제 규모가 중국에 따라 잡히게 됐습니다. 이제는 중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안전자산으로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엔화
성장률이 이런데도 일본 돈 엔화의 위상은 튼튼합니다. 세계의 주가가 급락했을 때 엔화 가치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6월 8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주식가격을 보여주는 다우존스지수가 27,572에서 25,128로 8.9% 떨어졌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2차 유행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미 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는 1.5% 올랐습니다. 세상의 위험이 커진 만큼 엔화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가치도 오른 겁니다. 또 다른 안전자산인 금의 가치도 같은 기간 1.7% 올랐습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230%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습니다. 이 정도의 국가부채면 웬만한 나라는 국가부도 사태에 몰리게 됩니다. 국가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181%, 아르헨티나는 52%입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세계 최악 수준인데도 그 부채 조달의 수단인 일본 국채는 일본 엔화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안전자산입니다. 낮은 수익률에도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기꺼이 인수하는 거죠.
저축으로 많은 해외 자산 보유
왜 일본 경제는 이런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일본인들의 성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일본인은 저축을 많이 하는 국민입니다. 최근에는 저축률이 2%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하던 1980년대 일본 가계의 저축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았습니다. 30%를 넘는데 미국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하죠. 생산한 것의 30% 이상을 저축하니까 소비가 그만큼 적은 겁니다. 일본은 수출을 많이 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무역흑자를 누렸습니다. 그 돈으로 외국에 건물도 사고 회사도 사고 미국 국채도 사들였습니다.

1990년대 이전 일본의 해외 자산은 마이너스였습니다. 빚을 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1990년부터 급격히 재산이 늘어서 1992년부터는 순채권국으로 바뀝니다. 2018년 현재로는 73조달러의 대외순채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제 규모가 거의 3배에 달하는 중국은 아직 26조달러입니다.

일본인들은 그 저축으로 해외 자산만 사들인 게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도 사들였죠. 일본 국채 중 외국인 소유 비중은 12.8%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막대한 일본 국채는 대부분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돈을 찍어서 갚아도 된다는 말이 되는 거죠.
‘신중한 기술우선주의’로 한국·중국의 추격 허용
일본의 전자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제조업은 세계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동차 전자 부품 소재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내놓을 만한 제품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유노가미 다카시라는 사람이 《일본 전자 반도체 대붕괴의 교훈》이라는 책에서 설득력 있게 밝혔습니다. 여기서 그는 일본인들의 지나친 기술우선주의, 회의 문화를 듭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데 시간을 너무 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일단 제품을 출시하고 고쳐 나간다. 일본 기업이 제품을 출시할 때가 되면 이미 한국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했고 다음 단계의 제품을 출시했다….

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도 일본인들은 실패가 두려워 계속 앞뒤를 재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일본인의 습성은 1990년대까지는 통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통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세상에 내놓고 고객의 요구에 따라 고쳐가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삼성과 LG가 그렇게 성공했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더하지요. 그러니 일본인들의 습성대로 행동하는 기업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겁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과 중국 기업에 따라 잡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일본도 안심하지 못한다는 평가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벌이가 줄어들다 보니 저축률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면 쌓아 놓은 재산도 줄어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일본 경제가 위험해진다는 조짐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워낙 조심스러운 데다 쌓아 놓은 돈이 많아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정호 < 서강대 겸임교수 >
NIE 포인트
① 일본 경제가 1990년부터 침체를 거듭하는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저성장 기조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② 장기 저성장으로 중국에 추월당했음에도 일본이 여전히 G7(주요 7개국) 유일의 아시아 국가로 튼튼한 경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왜일까.
③ 환율과 물가 수준을 고려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7년부터 일본을 앞질렀는데, 한국이 전반적으로 일본을 추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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