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매년 돗토리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본

입력 2020-07-10 17:46   수정 2020-07-11 00:04

지난 한 해 일본의 출생아 수는 86만5234명으로 1899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9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지난달 5일 발표된 통계를 접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난”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사망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다인 138만1098명. 그 결과 지난해 일본 인구는 51만5864명 줄었다. 일본 남서부 돗토리현(55만 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기대를 걸었던 ‘레이와혼(令和婚) 효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쓸려 내려가는 분위기다. 레이와혼은 지난해 일왕이 30년 만에 바뀌면서 연호로 채택한 레이와의 첫 번째 해에 올린 결혼식을 말한다. 결혼식을 레이와 원년에 올리려는 커플이 몰리면서 지난해 일본의 결혼 건수(58만8965건)는 7년 만에 처음 증가했다. 결혼이 많았으니 아기도 많이 태어날 걸로 기대했는데 경기가 급격히 식어버려 다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1억2700만 명인 일본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임신할 수 있는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7은 돼야 한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36으로 8년 만에 1.40선마저 무너졌다. 일본 정부는 현 추세대로라면 2050년께 일본 인구 1억 명 선이 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억 명은 내수시장만으로 국가경제가 유지되는 인구하한선이다.

일본 정부는 1990년 ‘건강하게 자녀를 낳고 키우는 환경에 관한 관계 성청 연락회의’를 개최해 저출산을 국가적인 문제로 공식화한 이후 30년간 저출산과 싸우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2009~2019년 10년간 쏟아부은 예산만 40조8684억엔(약 454조8326억원)이다. 지난해는 5조1196억엔으로 처음 5조엔을 넘겼다.

저출산과의 30년 싸움에서 일본이 좀처럼 승기를 못 잡는 원인은 우리나라와 같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 ‘육아는 부모의 자기책임’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지 못한 채 그저 보조금만 살포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아이 1명당 매월 1만~1만5000엔의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2010년 무렵까지 저출산대책 예산의 70%가 아동수당이었다. 아동수당이 기저귀와 분유 값 부담을 덜어주지만 그것 때문에 애를 낳지는 않는다는 건 한·일 양국 부모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 정부도 뒤늦게 결혼과 육아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예산에 반영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양육수당은 1조6856억엔으로 유지하는 대신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희망을 실현하는 환경 정비’에 1조8594억엔, ‘남성의 일하는 방식 개혁’에 6876억엔 등을 투입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재원부담에 시달리게 됐다. 저출산 예산이 5조엔을 넘어 10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탓이다.

최저 출생아수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지난달 새로운 저출산대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대책에 구체적인 목표치를 추가한 게 특징이다. 이 목표치에 일본 사회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 취득률 30% 달성, 첫 아이를 낳은 여성이 계속해서 일하는 비율 70% 달성, 대기아동(정원이 넘쳐 보육원에 가지 못하는 아동) 완전 해소 등이다.

현실은 어떤가. 2013년 육아휴직을 쓰는 일본 아빠는 2%였다. 올해까지 13%로 높이는 게 일본 정부의 목표였지만 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애를 낳고 키우는 30대 여성의 취업률이 크게 떨어지는 ‘M커브’ 역시 만성이 됐다. ‘대기아동 제로작전(2001년)’, ‘신대기아동 제로작전(2008년)’ 등 역대 저출산 중점대책 작명 추이를 보면 대기아동 해소도 매번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이 일본의 이런 현실을 예로 들며 ‘그래도 일본보다는 낫다’고 자위한다. 그런데 일본의 출산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는 점은 의외로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77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젊은 부부들은 일본보다 훨씬 승산이 낮은 싸움을 치러야 한다. 실질 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집값 탓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저출산대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집값이 치솟아 아이들을 키울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게 경단녀 대책?…맞벌이엔 보육료 깎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각은 저출산 대책에 적극적이다. 일하는 여성을 늘려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위미노믹스(Womenomics)’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경단녀’(결혼·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보는 것’이라는 일본 사회의 고정관념이 뿌리 깊은 탓도 있지만 제도상 허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설 어린이집(인증보육원)에 아이를 보내는 가정에 실비를 지원하는 무상보육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다. 0~2세는 월 4만2000엔(약 47만1370원), 3~5세는 월 3만7000엔(약 41만5210원)까지 지원한다. 단 2세까지는 주민세 비과세 대상의 저소득층만 지원 대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독려한다면서 맞벌이로 소득이 늘면 제 돈을 들이도록 했다.

게다가 웬만한 사설 어린이집의 보육료는 월 6만엔을 넘는다. 도쿄는 사설 어린이집조차 정원 초과인 지역이 많아 정원 외로 아이를 임시로 맡는 일시보육 제도를 추가했다. 일시보육료는 시간당 800엔으로 정해져 있다. 업무시간 동안 아이를 맡기면 점심값을 포함해 하루 7500엔(약 8만4200원)이 든다. 맞벌이 부부들이 ‘차라리 외벌이가 낫다’고 자조하는 이유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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