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A연구소는 2017년 말 보유 특허를 기반으로 기관투자가로부터 18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동통신분야 ‘표준특허 풀(pool)’을 갖고 다국적 통신기업과 로열티 협상을 하며 수익을 올렸다. 투자 유치 1년8개월 만인 지난해 8월 투자금의 세 배인 54억원의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연 환산 수익률이 180%에 이른다.
# 자금난에 시달리던 ‘스마트 농장’ 관련 스타트업 B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기계연구원이 이전한 보유 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2018년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활발한 영업을 펼친 B사는 올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 초청받으며 해외 진출 기회를 잡았다.
과학기술로 만든 발명품 등에 대한 독점적 권리인 특허에 투자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부가 지식재산권(IP)을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투자 활성화 대책을 적극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허, 상표, 디자인권 등 ‘산업재산권’과 음악, 미술, 사진, 영상, 소프트웨어 등 ‘저작권’을 아울러 IP로 부른다.
특허청을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는 지난 2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IP 금융투자 활성화 전략’을 내놨다. IP 투자는 IP를 사고팔거나 유동화해 수익을 올리는 기법을 말한다. 특허를 매입한 뒤 침해소송 등으로 배상금을 받아 수익을 올리는 것도 포함된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IP에 직접 투자하는 공모펀드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 IP 투자는 사모 위주로 진행됐다. 정부는 올해 660억원 규모 모태펀드(특허계정 400억원, 문화계정 260억원)를 조성해 두 가지 유형의 공모펀드를 지원한다. 특허 로열티의 현금흐름에 기반한 ‘안정형 펀드’, 소송 수익에 기반한 ‘수익형 펀드’ 두 가지다.
특허청에 따르면 유망 특허(보유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 방침인 모태펀드 특허계정은 출자금 24억원당 코스닥 상장사 1개를 배출하고 있다. 120억원을 다섯 개 기업에 투자했을 때 이 중 한 곳이 코스닥에 입성했다는 얘기다. 전체 모태펀드 계정의 코스닥 상장사 배출 비율(160억원당 1개)보다 운영성과가 6.7배가량 높다는 설명이다.
수익형 펀드는 특허관리전문회사가 침해(무단 사용)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계약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했을 때 소송을 걸어 배상금을 확보해 수익을 올린다.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 배심원단은 미 USB메모리장치 기업 킹스톤테크놀로지가 한국 특허관리전문회사인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75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대상 특허는 USB 단자를 보호하는 회전덮개 기술이다. 그다지 고급 기술은 아니지만 아이디어 발명품이다. 국내 한 중소기업이 2002년 출원한 이 발명품을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가 2015년 3억원에 매입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킹스톤은 7년간 이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하며 부당이득을 취해왔다”며 “향후 1심 판결에서 판사가 고의 침해를 인정하면 배상액이 2200만달러(약 260억원)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 또는 신탁회사가 보유한 IP의 연차등록료도 50~70% 감면한다. IP 투자 방법을 종합적으로 상담받을 수 있는 콜센터인 ‘지식재산 금융센터’를 다음달부터 운영한다. 법무부는 동산, 매출채권, IP 등 기업 자산을 한꺼번에 담보로 설정하는 ‘일괄담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IP 투자 규모는 343억원으로 IP 담보대출(1조3504억원)의 2.5%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엔 IP 가치평가 방법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아 IP 담보대출은 엄밀히 말하면 IP 투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IP 투자활성화 계획을 통해 2024년까지 IP 투자시장 규모를 1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343억원보다 38배 늘리고, 만성 적자인 IP 무역수지를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IP 무역수지(산업재산권+저작권)는 지난해 8억90만달러 적자를 냈다. 특허 등 산업재산권은 21억4450만달러 적자로, 전년(15억2490만달러)보다 적자폭이 40% 늘어났다.
IP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산업 지형이 바뀌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IP 투자의 적기”라며 “국내에 넘치는 수천조원대의 시중자금을 IP에 투자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술 주도권을 우리가 쥘 수 있다”고 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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