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아니면 이제 서울에 괜찮은 집 못산다" 3040의 절규

입력 2020-07-13 15:17   수정 2020-07-13 15:28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린다.”

장하성 주중대사(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가 2018년 9월 라디오방송에서 내놓은 이 발언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했는데도 정부 고위 관계자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대신 ‘강남 아파트는 원래 비싸다’는 식의 메시지를 내놨기 때문이다. 장 대사 말대로 ‘원래 비쌌던’ 강남 아파트 가격은 발언 이후 계속 가파르게 뛰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인터뷰 당시인 2018년 9월 9억6453만원이었던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중위매매 가격은 11억1273만원까지 올랐다.

문제는 강남뿐 아니라 서울 전체 아파트값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3040 세대의 ‘서울 입성’이 극히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서울지역 아파트 중위매매 가격은 2017년 5월(6억708만원)보다 3억원 넘게 오른 9억2509만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각종 대출 규제가 무차별적으로 신설되면서 서울 아파트 실수요자들인 3040 세대가 모든 자원을 동원해도 서울 아파트 매수가 불가능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요즘 3040 세대가 “금수저가 아니면 서울에 살지 말란 얘기냐”는 한탄을 쏟아내는 이유다.
① 서울·강남 집값, 올라도 너무 올랐다
3040 세대가 서울에 집을 사기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도저히 소득으로 충당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7억3347만원이었지만 지난달에는 11억1273만원까지 올랐다. 불과 4년여만에 4억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매년 1억원 가까이 모아야 가격 상승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셈이다. 전문직 고소득 맞벌이 부부에 아이가 없더라도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다.

강남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 집값이 급등했다. 2017년 5월 6억708만원이던 서울 전체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지난달 9억2509만원까지 올랐다. 중위가격은 주택 매매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가격을 뜻한다. 서울에서 평균적인 수준의 집을 사려면 9억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이때까지 23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결과는 예외 없이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규제 대상 지역의 아파트값이 1~2달 조정기간을 거친 뒤 급격히 반등하는 일이 반복됐다. 오히려 규제 지역 인근의 수요가 늘어나는 ‘풍선 효과’가 일어나면서 수도권 지역 집값이 빠짐없이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②15억원 이상 강남 주택 구입은 '원천봉쇄'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각종 대출 규제를 꽉 조인 것도 3040을 좌절시킨 요인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서울 기준 각각 70%, 60%였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각 40%로 줄었다. 9억 원보다 비싼 아파트를 살 때 9억 원 초과분은 LTV가 20%만 적용된다.

자산이 부족한 3040은 대출을 감당할 능력이 있더라도 고가 주택 구입이 원천 봉쇄됐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12·16 대책’으로 15억 원 이상 아파트를 구입할 때는 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게 돼서다. 초고가 주택의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였지만 대신 현금을 동원할 여력이 있는 ‘금수저’들만 부모의 도움을 받아 초고가 주택을 쓸어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실수요자가 집을 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투기적 수요 1명 차단을 위해 선량한 수요자 10명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면 안된다”고 말했다.
③ 무차별 규제로 매도→증여…'매물 잠김' 우려
정부는 ‘7·10 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인상하면서도 다주택자가 집을 팔고 떠날 수 있는 ‘출구’까지 틀어막았다. 규제지역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세율을 크게 높여서다. 이번 대책으로 3주택 이상 보유자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양도할 때 중과되는 세율이 20%포인트에서 30%포인트로 높아졌다. 2주택 보유자는 10%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오른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양도차익에서 필요경비와 공제액을 뺀 과세표준이 5억원을 초과할 경우 기본세율 42%가 적용된다. 여기에 30%포인트를 더하면 양도세율은 72%까지 치솟는다. 양도세액의 10%를 지방세로 납부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3주택자 세율은 79.2%에 달한다. 다주택 소유는 물론 매각에도 징벌적 과세가 부과되는 구조라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정책으로 매각 대신 자식에게 증여를 택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증여세율은 최대 50%로 양도세 최고세율(최고 72%)보다 낮고 취득세 부담도 덜하다. 정부가 2017년 8·2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방침을 밝히자 2018년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의 증여 비중이 전년 대비 10%포인트 오른 17.4%까지 상승한 적도 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시장에 풀리는 매물이 줄고, 오히려 3040 실수요자들이 집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④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그림의 떡'
정부가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내놓은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7·10 대책에 생애최초 구입자나 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급 확대와 소득 기준 완화 등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분양가 6억 원 이상 생애 첫 주택을 사는 신혼부부의 신청 기준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30%(569만원)까지, 맞벌이의 경우 140%(613만원)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평균 월급은 501만원이고 중소기업은 231만원이다. 일반적인 중산층 부부의 경우 신혼부부 특별공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자산 기준은 없어 ‘금수저’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공급이 늘어나는 만큼 일반분양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국민주택에서 특별공급 비율이 80%인데 생애최초 비율이 추가되면서 전체 특별공급 비율은 85%가 됐다. 가점제로 당첨될 수 있는 일반공급 물량 비율은 15%로 줄었다. 신혼부부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30대 일부와 40대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⑤ 자사고 폐지 등과 맞물려 '교육 불평등' 우려
전문가들은 3040 세대의 서울·강남 입성이 어려워진 데다 현 정부가 자립형사립고등학교 폐지 등의 교육정책까지 시행하면서 학군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남 집값이 잡히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이다”며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는 등 정책을 펼치니 좋은 학군으로 학부모들의 수요가 몰려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동산 대책은 교육 정책도 포함해 종합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집값을 잡으려면 공급을 확대하는 등 시장 원리에 맞는 해법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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