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간섭주의·설계주의를 내려놔야

입력 2020-07-13 17:47   수정 2020-07-14 00:52

한국은 2017년에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30-50클럽’에 안착했다. 2018년에는 1인당 소득이 3만3434달러였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G7(주요 7개국)에 진입한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년인 1962년을 기점으로 50여 년 만의 쾌거다. 하지만 2019년 1인당 국민소득은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4.1% 줄어든 3만2047달러다. 2020년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 평가절하와 원화표시 명목국민소득 감소를 전제로 하면 한국은 30-50클럽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과거 한국 경제가 순탄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뚝이같이 ‘V자’ 반등을 했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1980년 2차 오일쇼크,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0%대 성장을 기록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는 극적으로 극복해냈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저성장이 구조화됐기 때문이다. 실질 경제성장률은 2017년 3.2%에서 2018년 2.7%, 2019년 2.0%로 급전직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세계 평균에 못 미치는 성장률에 그쳤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위험 신호를 알리는 상징이다. 한국 경제에 위험 신호가 늘어나고 있다. 구조개혁과 기술혁신은 지지부진한데, 정책 리스크는 쌓이고 있다. 이는 관리 가능한 위험 신호라 차라리 양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위험 신호는 경제를 둘러싼 정치환경이다. 정치권의 ‘반(反)시장적 설계주의’가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기념식에서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런 당연한 얘기를 한 배경에는 ‘아직도 남의 몫을 빼앗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더 나아가 “평등경제는 우리가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이는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평등경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포용성장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 같다. 논에 물을 대듯이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균점될 수 있도록 소득의 물꼬를 제도적으로 틀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국가 통제하에 두는 그리고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은 고사하고 경제불평등이 큰 이유를 곱씹어야 한다.

21대 국회는 거대 여당이 지배하는 초유의 국회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각종 규제법안이 다시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들 법안 대다수가 반(反)기업, 친(親)노조 규제법안이라는 게 문제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부터 살펴보자. 전면개정안의 목적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력 집중과 관련해 ‘시장집중’은 물론이고 ‘일반집중’과 ‘소유집중’을 규제해왔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라는 구조적 환경 변화 속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규제 중심의 경쟁정책으로,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에 기름을 붓고 외국 자본의 국내 진입에는 손사래를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장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간명하다. 간섭주의와 설계주의에서 벗어나면 된다. 시장 권력은 ‘시장 의인화’의 결정판이다. 시장의 권력은 경쟁력의 다른 이름이며 소비자와 투자자가 부여한 것으로, 그 자체가 상수(常數)일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바이오와 시스템 반도체 그리고 게임(BSG)이 구체적 대안이다. 게임은 상상력이 자본이다. ‘바이오·제약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약가(藥價)를 비용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혁신은 유인을 기반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50년 넘게 땀과 눈물로 얻은 30-50클럽의 지위를 내놔야 한다. 투자 견인과 혁신 추동이 경제의 태엽이다. 이제는 간섭주의와 설계주의를 내려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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