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 최선을 기대합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4일 열린 하반기 롯데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내년 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며, 그동안 경제는 코로나 이전의 70% 수준으로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나 그룹 임원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신 회장은 계열사 대표들에게 “위축되지 말고, 단기 실적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으로 본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고 독려했다.
신 회장은 타개책으로 우선 해외 사업 전략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1∼2년만 잘 견디면 회복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간 많은 생산시설이 해외로 나갔지만 지금은 신뢰성 있는 공급망을 재구축할 필요성이 커졌고 투자도 리쇼어링(본국으로 생산라인 회귀)하고 있다”며 “해외 사업을 진행할 때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신 회장이 지난 3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선진국 투자 확대 방안과 같은 맥락이라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롯데는 그간 화학 등 수요가 많았던 중국과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해외 투자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이들 국가에 있는 생산 설비 운영에 차질이 생기자 선진국과 국내 위주의 투자를 하기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신 회장은 국내 계열사 대표들에게는 본업의 경쟁력을 키울 것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5일 일본에서 귀국한 뒤 주말마다 전국의 롯데 사업장을 방문하고 있는 신 회장은 “직접 가보니 잘하는 것도 있지만 부족한 점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과 신산업도 중요하지만 그간 우리가 해 온 사업의 경쟁력을 재확인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본업 부문을 혁신해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당부했다.
기간도 대폭 줄였다. 그간 하반기 VCM은 4~5일간 진행됐다. 식품, 유통, 화학, 호텔 등 그룹 사업부문마다 하루씩 중장기 성장 전략 등을 놓고 회의했다. 마지막 날에는 부문장들이 회의 결과를 신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올해는 14일 하루만 열렸다. 많은 사람이 참석한 만큼 접촉을 최소화했다.
신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룹의 업무 방식을 과감히 바꾸고 있다. 신 회장 자신이 코로나19로 일본에 두 달간 체류하는 동안 화상회의와 재택근무를 해보고 “비대면 회의와 보고가 생각보다 효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룹 내에선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등이 주 1회 재택근무를 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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