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들어 여당 의원들의 주도로 발의된 두 개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두고 부실입법 논란을 일고 있다. 4년 전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이뤄진 제도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소위 '재탕' 법안들이 발의되면서 기금운용 현장에 불필요한 잡음만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두 법안 모두 그대로 실현될 경우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입김을 커지게 해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미 개편 두 번이나 했는데...법안은 3년전 그대로 '재탕'
본지 분석 결과 두 법안은 각 의원이 20대 국회 시절이던 2017년 2월 발의했던 법안과 토씨 한 글자 차이 없이 동일했다. 이 의원은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의 첫 문장이 "2016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운용규모는 512조원"으로 시작한다. 발의 후 3년이 지나 국회 회기가 바뀌었음에도 최소한의 기본 정보조차 갱신하지 않은 셈이다.
정 의원안은 이미 개편이 이뤄져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을 새롭게 개편해야 한다는 법안을 그대로 발의했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결위)의 인원을 확충하고, 기업의 인수·합병 등 중요 안건을 비롯해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의결권 행사는 모두 이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한 것이 이 법안의 골자다.
하지만 이미 2018년 7월 국민연금은 기존의 의결위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개편했다. 작년 10월엔 새롭게 도입한 기금위 상근전문위원을 중심으로 수탁위를 다시 개편했다. 이미 두 차례의 대대적 개편을 거쳐 옛 일이 된 이슈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재탕'한 것이다.
◆"형식 차치하더라도 제안 내용도 비현실적"
문제는 두 법안이 단순히 형식의 부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 의원안은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실현될 경우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지나치게 정치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의원안을 일단 지금의 편제에 맞춰 적용해보면 수탁위가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수는 313곳에 달했다.
현재 수탁위는 일정 수 이상 위원의 동의를 확보해 발의된 안건이나 실무 조직인 기금운용본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이 어렵다고 결정한 사안만을 심사한다. 법안대로라면 수탁위의 심사 범위는 기업 인수·합병 등 주요 사안을 비롯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으로 크게 확대된다. 한 수탁위원 출신 교수는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던 한진칼의 경우 한 사건을 가지고도 며칠에 걸쳐 논의가 이뤄졌다"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칫 의결권 행사 절차를 지나치게 정치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 안은 기금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기금위원 중 관계 전문가의 수를 2명에서 4명으로 늘리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기금위는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과 당연직 위원인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차관 5인, 연금 가입자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 추천 3인, 노조 추천 3인, 지역가입자 단체(자영업, 농어업, 시민단체) 추천 6인, 관계 전문기관 2인으로 구성된다.
이 의원이 충원을 주장하는 관계 전문가는 현재 각각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사회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의 장들이 맡고 있다. 기금위 내부를 비롯해 학계 등에선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뿐 아니라 연기금의 기금운용에 대한 전문성이 뚜렷하지도 않은 국책연구기관의 장이 기금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돼왔다. 한 기금위원은 "기금위의 지난해 상근전문위원 신설로 보충했고, 기금위 구성에 대해선 정부 비중을 줄이고 연금 기여분이 높은 경영계와 노동계 비중을 높여 독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의원안은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보여도 현실적으론 전문성도 높이지 못하고 되려 독립성만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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