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37·여)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과 무죄를 각각 선고 받았다.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15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전 남편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에게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 남편인 피해자를 면접교섭권을 빌미로 유인, 졸피뎀을 먹여 살해하고 시신을 손괴·은닉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변명으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생명 침해와 잔인한 범행 방법, 피해자 유족의 고통 등을 고려해 원심과 동일한 형량을 선고한다고 밝히고, 1심과는 달리 전 남편 살해에 사용된 차량 등 범행도구들의 몰수형을 추가로 부가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어 무죄로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의붓아들 살해 혐의 입증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뒷받침 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사가 제출한 간접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부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의 사망 원인이 확정적이지 않고 당시 현장 상황이나 전제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점, 사망 전 피해자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 상태였고 왜소했으며, 친부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평소 잠버릇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포압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유력한 살해 간접정황으로 제기됐던 '의붓아들 사망추정시각에 피고인이 깨어 있었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양측성 시반이나 사후경직 상태만으로는 의붓아들의 정확한 사망시각 추정이 어렵고, 1심에서 인정된 '피고인이 사건 당일 새벽 안방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한 사실'은 증인신문 결과 증명력이 번복됐다는 지적이다.
고유정이 새벽에 침대를 벗어나 현 남편 홍모씨와 의붓아들이 자고 있던 안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의붓아들을 살해했다는 검찰 측 주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결론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전 남편 측 강문혁 변호사는 "피해자를 어떻게 더 잔혹하게 살해해야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느냐"면서 "시신을 알아볼 수 없게 손괴하고 은닉했는데도 사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점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사형제 존폐 논란과 관계없이 현행법에 따라 사형 판결이 가능한 사건인데, 재판부가 피고인의 주장을 전면 배척하고, 계획적 범행이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1심과 똑같은 판결을 내린 점이 아쉽다. 국민의 법 감정과도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의붓아들 측 이정도 변호사 역시 "법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실치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을 보인다"면서도 "이 사건과 같이 밀실에서 이뤄진 범행인 경우 가해자가 증거를 인멸하고 부실한 수사가 더해진다면 살인죄를 입증할 방법이 요원해진다"고 했다.
이날 고유정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17일 결심공판에서 고유정에 대해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연쇄살인 했다"며 '사형'을 구형한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도 변호사는 "검찰이 상고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검찰이 공소유지에 힘써주길 바란다. 결국 대법원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25일 오후 8시10분에서 9시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후 바다와 쓰레기 처리시설 등에 버린 혐의로 재판에 남겨졌다.
또 같은 해 3월2일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는 의붓아들의 등 위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눌러 살해한 혐의도 받는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