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듯이 출렁대는 남북관계의 배경에는 북한의 새로운 대남전략이 있다. 전략의 핵심은 핵을 가진 북한이 명령하고 핵이 없는 남한은 복종하는 ‘북명남복(北命南服)’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핵개발 완성의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언한 2018년부터 북한은 남한을 무릎 꿇리고 입맛에 맞게 활용하는 강온양면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핵을 독점한 북한이 무방비 상태로 핵의 인질이 된 남한을 어르고 뺨치면서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경제난 해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온건노선을 택했으나, 국제사회의 제재에 막혀 실패하자 강경노선으로 선회했다. 김정은이 김여정에게 대남사업을 맡긴 것은 김여정이 후계자로 부상한 측면보다는 남한을 하대하겠다는 전략적 의미가 더 크다. 김정은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왕(上王)으로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을 상대하고, 남한은 그 밑의 수준에서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김씨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햇볕론자들이 신성시하는 6·15 공동선언 20주년 바로 다음날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무모함도 새로운 대남전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북명남복의 시대에는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선언, 10·4 선언 등은 잊고 싶은 과거의 추억이다. 당시의 불리한 국제정세와 대남 열세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세적인 입장에서 합의한 문건들은 새로운 시대에는 빛바랜 장식물에 불과하다.
앞으로 북한은 한국을 폭력배에 갈취당하는 상인처럼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전쟁 일보직전까지 위기를 고조시킨 뒤 전쟁으로 폭삭 망하기 싫으면 대가를 지불하라는 북한의 공갈협박이 일상화할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감을 준 연락사무소 폭파는 시작에 불과하다. 밑에서 시작한 협박을 상부에서 보류한 다음, 김정은의 자제와 결단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만큼 감사의 표시로 ‘평화 배당금’을 지급하라며 압박할 것이다. 대규모 경협과 무상지원, 공단과 관광 사업 등은 진정한 남북협력의 수단이 아니라 핵 대결전에서 승리한 북한의 전리품이자 핵개발 비용을 회수하는 도구일 뿐이다.
북한은 대외관계에서도 남과 북의 위계질서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기 위해 활발히 움직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김여정의 7월 10일자 대미 담화는 의미심장하다. 담화의 핵심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중간단계를 건너뛰고 핵을 가진 채 국교수립으로 바로 진입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작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정면돌파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김정은의 건강이상과 경제난에 대한 설이 난무하면서 경제 제재만 잘 하면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그러나 경제 제재만으로 독재국가의 핵을 포기시킨 전례가 없다. 후일 김정은을 대체하는 세력이 나와도 핵과 독재를 고수하는 한 북명남복의 대남전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에서 벗어나려면 ‘핵 대 핵’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독자 핵무장을 카드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주한미군이 재래식 전쟁을 막은 것처럼 이 땅에 핵이 있어야 핵도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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