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은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경제활동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금융지주들은 기존의 성장 전략을 새로 짜야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금융지주사들이 꺼내든 방안은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진출이었다. 인공지능(AI) 등 최신 정보기술(IT)을 총동원해 언제 어디서든 최적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 외에는 해법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지주들은 국내 중심의 대면 영업 구조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에 사활이 걸려 있다며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금융지주들도 꾸준히 환골탈태를 준비해왔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핀테크에 공을 들이며 디지털 세상으로 진입하려고 노력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막강한 기술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됐다.
금융지주들은 영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비로소 각성하게 됐다. 디지털에서 승부를 볼 수 있으면 해외 시장 공략에도 크게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금융지주들의 생각이다.
신한금융은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금융 분야의 규제 샌드박스)에서 국내 금융권 최다인 8개 사업이 선정됐다. 지난 4월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헬스케어 등 디지털 핵심 기술을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책임지고 육성하는 ‘디지털 기술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는 데이터 3법 시행, 규제 개혁, 언택트 경제 활성화 등을 계기로 ‘디지털 전환의 골든타임’을 맞는 시기인 만큼 디지털화에 더욱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5월 그룹 차원의 디지털 전환을 총괄하는 조직인 디지털혁신위원회를 신설했다. 디지털혁신위원회는 빠른 혁신의 결과를 내기 위해 톱다운 방식으로 운영된다. 손 회장이 위원장, 권광석 우리은행장이 산하 총괄장을 맡는다. 손 회장은 새로운 디지털 비전을 선포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언택트) 바람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라며 “지금이 디지털 혁신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농협금융은 ‘사람 중심의 디지털 농협금융’이라는 디지털 전환(DT) 비전을 갖고 있다. 농협금융은 3년간의 대대적인 DT 혁신을 통해 1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2025년까지 디지털 전문 인력을 2300명 채용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김광수 회장은 “디지털 혁신의 수단은 기술이지만 목적은 사람이어야 한다”며 “금융소비자와 직원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디지털 휴머니즘’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금융은 DT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 방향도 세웠다. △고객 경험 혁신 △오퍼레이션(업무 처리) 디지털화 △혁신 신사업 추진 △실행 인프라 구축 등 네 가지다.
BNK금융은 모든 계열사의 모바일플랫폼 고도화, 로봇자동화프로세스(RPA)를 통한 업무 자동화, 페이퍼리스 및 생체인증 도입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부산은행과 BNK캐피탈은 KT와 협력해 통신정보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 대출을 집행하고 있다. 실제 신용도보다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하는 ‘신파일러(thin filer: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사람들)’들에게 유용한 상품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부산은행 디지털금융본부 안에 비대면 영업추진 전담 부서인 언택트영업부를 신설했다. 그룹 통합 모바일 BNK금융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지난 4월 그룹 ‘글로벌 부문’ 산하에 그룹글로벌총괄(CGSO)을 두는 조직 개편을 했다. 지주회사 내 기존 글로벌전략팀을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 글로벌기획조정팀, 글로벌성장전략팀으로 재편했다. 글로벌 전략 수립과 기획, 각 네트워크에 대한 경영 진단, 글로벌 인력 육성 및 관계사 간 인력교류 지원 등 더욱 전문화한 업무를 하라는 취지다.
KB금융그룹은 올해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면서 비은행 부문을 대폭 강화했다.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우량 계열사를 잇따라 확보하면서 ‘리딩금융그룹’의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계열사 간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그룹 전체의 시너지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KB금융은 그동안 잇따라 우량한 금융 계열사를 M&A를 통해 확보해 왔다. 2014년 KB캐피탈(옛 우리파이낸셜), 2015년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2016년 KB증권(옛 현대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를 인수하기 전 20%에 불과했던 그룹 내 비은행 순이익 비중은 2018년 30% 수준까지 올라갔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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