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자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인 마커스 드 사토이는 신간 《창조력 코드》에서 최근 과학계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인 ‘AI와 창조력’을 넓고도 깊게 탐구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와 인간의 현명한 공생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창조력의 본질과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상상하고 혁신하는 능력, 인간 존재의 의미를 높이고 넓히고 바꾸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바로 창조력이다. 예술작품은 저자가 ‘인간 코드’라고 부르는 것이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다. 창조력은 인간다움에 의존하는 코드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창조력이란 새롭고, 놀라우며, 가치있는 뭔가를 내놓고자 하는 충동이기도 하다. 이는 오랫동안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졌다. 어찌 보면 창조적 표현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인간의 뇌 속에서 발달해온 일종의 코드다. 창조 과정의 밑바탕엔 규칙이 있다. 창조력은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알고리즘적이고 규칙적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AI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인간 코드의 경이로움과 맞먹거나 뛰어넘는 창조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저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수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서 창조력을 발휘하는 AI들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출발점은 AI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알파고다. 실패에서 뭔가를 배우는 코드에 기반을 둔 알고리즘은 새롭고 충격적이고 가치있는 일을 해낸다. 알파고가 그런 알고리즘이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과의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제2국 초반에 ‘5선’에 걸친 37수는 ‘새롭고, 놀랍고, 가치있는 수’였다. 정수에서 벗어난 ‘아름답고 창조적인 수’였다.
AI 작곡가 ‘에미’가 발표한 쇼팽풍 곡은 음악 전문가를 충격에 빠뜨렸다. 기계 학습을 통해 문학을 창작하는 ‘보트닉’의 새 소설은 해리 포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의 초상화는 ‘렘브란트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위대한 인간의 창조력에 필적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고 평가한다. 현 단계의 AI 창조력은 모두 인간 코드를 원동력으로 한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는 “기계가 독자적인 의식을 얻기 전까지는 기계의 창조력이 발현된 예술 작품이 아무리 정교하다 한들 그것은 인간의 창조력을 확장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AI가 앞으로 더욱 진화해 독자적인 의식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인간이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 뇌를 작동시키는 인간 코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듯, AI의 예술 작품을 통해 그 코드의 작동 원리를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지금도 컴퓨터의 예술작품을 살펴보면 코드의 잠재의식적 판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코드를 작성한다는 일의 본질적 한계와 위험을 밝힐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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