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강릉은 그런 곳이었다. 바다 보며 커피 한 잔 마시러 훌쩍 떠날 수 있는 도시. 2000년대 초 테라로사(사진)와 보헤미안은 작은 가게였다. 서울을 벗어나 잠시 솔향과 바다향 맡으며 세상의 모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 강릉은 그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커피의 도시가 됐다.
한국의 카페 수는 인구 1만 명당 14개다. 강릉은 두 배에 육박하는 25개다. 테라로사와 보헤미안은 전국구 카페이자 토종 스페셜티 커피의 ‘원조 브랜드’가 됐다. 횟집 몇 개가 고작이던 안목해변 카페거리는 500m 거리에 카페가 줄지어 있다. 강원 동해안 지역 커피 전문점은 1166개. 이 중 45%가 강릉에 몰려 있다.
강릉이 커피의 도시가 된 데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선 강릉의 자연과 문화적 자산이 커피 도시의 뿌리라는 설. 강릉은 강원관찰사가 상주하던 행정 중심지이자 명문 사대부 집안이 많아 예부터 풍류와 사교 문화가 발달했다. 차 문화와 계 문화가 발달한 다도의 중심지였다. 자연스럽게 그 문화가 커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1호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만들겠다”며 강릉에 내려오고, 2002년 고향이 강릉인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가 강릉에 터를 잡고 커피 공장을 연 것이 커피 도시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대 안목해변에서 청춘을 보낸 강릉 사람들은 이 해변을 전국 최고의 커피자판기가 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대형 커피 브랜드와 초호화 카페가 늘어선 곳이지만 당시엔 연인들이 즐겨 찾는 한적한 데이트 코스였다. 강릉지역 라디오 방송에는 “안목해변 자판기 커피가 참 맛있었다”는 사연과 “OO번째 자판기가 제일 맛있다더라”라는 사연들이 매일 도착했다. 당시 1㎞ 남짓한 구간에는 50여 대의 자판기가 있었다. 지금도 이 거리 한쪽에 추억의 안목해변 자판기가 남아 있다.
붐비는 안목해변 거리를 피해 요즘 사람들이 찾는 새로운 커피 명소는 명주동이다. 명주예술회관에 이르는 명주동 일대는 강원도 말로 ‘천천히’라는 뜻의 시나미를 붙여 시나미명주길로 불린다. 주민과 동네 청년들이 가꿨다. 1940년대 지어진 방앗간을 개조해 2011년 문을 연 봉봉방앗간을 시작으로 오래된 적산가옥을 카페로 개조한 오월커피, 함께 마주하고 있는 명주배롱, 골목 끝 남대천변에 있는 칠커피까지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가 즐비하다. 일곱 칸의 여인숙이 있던 자리여서 칠커피, 마당에 배롱(백일홍)나무가 있어 명주배롱 등 카페 이름의 유래도 재밌다. 이 동네에선 바다가 없어도 진짜 강릉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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